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차량으로 치고도 사고 사실을 몰랐다며 범행을 부인한 80대 운전자가 차량 블랙박스에 남은 사고 영상 등을 통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정문경)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도주치상·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A(84)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유지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월 29일 오후 3시39분쯤 전북 정읍시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B(11)군을 차량으로 들이받고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 교정시력이 우안 0.03, 좌안 0.3으로 기재된 진단서를 제출하며 “B군을 차로 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차량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 A씨 차량은 충격을 감지하면 영상을 자동 저장하는 기능이 있어 사고 이후에도 관련 영상이 남아 있었다.
영상에는 A씨의 차량이 B군을 들이받은 뒤 급정거하는 모습과 함께 차량에 함께 탄 부인이 사고를 인지한 듯 창문을 내리고 “아가 혹시 다쳤나?”라고 말하는 장면도 담겼다.
1심 재판부는 블랙박스 영상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사고 조사 보고서 등을 토대로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블랙박스 영상을 살펴보면 차량이 피해자를 충격한 부분은 운전석이 있는 좌측 앞 범퍼 부분”이라며 “이 사고는 보행자가 튕겨 나갈 정도의 충격이 있었기 때문에 차체의 진동이나 충격음 등 시각 외의 감각을 통해서도 충분히 충돌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당시 11세였고 사고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피고인은 적어도 피해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거나 그 부모에게 연락하는 등 조처했어야 한다”며 “따라서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거나 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항소 기각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