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가 전력수요 전망을 발표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재전망’ 결과를 내놓으면서 드러난 건 전기본의 민낯이다.
전기본은 앞으로 15년 동안 우리나라가 발전·송변전설비를 언제, 어디에, 얼마나 지어야 할지 정하는 ‘국가 전력 종합 설계도’다. 전기본 수립 전 내놓는 전력수요 전망은 설계도의 ‘밑그림’이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오는 10월 12차 전기본 정부안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총괄위는 이미 지난 4월 전력수요 전망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부랴부랴 수요를 다시 계산해야 했다.
4월 전망 때만 해도 2040년 예상 최대 전력수요는 131.8∼138.2GW(기가와트)였다. 메가프로젝트 내 반도체 산업단지·데이터센터 등 투자 계획을 반영해 20일 내놓은 재전망 결과에서는 2040년 예상 최대 전력수요가 158.4∼165.0GW로, 4월 전망보다 무려 20%가량(26.6∼26.8GW) 늘었다. 이는 1.4GW급 신규 원전 19기 용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재전망 내용을 뜯어보면 전력수요 전망이란 게 과학적 예측이라기보다 정부·기업의 미이행 투자 계획에 대한 ‘가짜 영수증 발급’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기본 총괄위원회 수요계획소위원회(수요소위)는 반도체 전력수요의 경우 정부가 발표한 대로 메가프로젝트 내 용인 클러스터 조기 준공, 호남권 클러스터 신규 조성 등을 전부 반영했다. 수요소위가 공개한 자료에 그 기준으로 적시해놓은 게 무려 ‘정책 의지의 구체성’이었다.
데이터센터 같은 경우 그나마 1단계(10.8GW)와 2단계(10GW)로 구분하고 1단계만 예상 전력수요에 넣었다. 발표 현장에서 1, 2단계 분류 기준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수요소위 측은 ‘지역 선정 여부’라고 답했다. 어느 지역에 세울지 계획만 있다면 일단 반영했다는 것이다.
제각각인 기준에 결론을 정해놓고 꿰맞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거 전기본 산정 방식을 견줘 보면 더 그렇다.
데이터센터 수요를 별도 산정하기 시작한 11차 전기본(2024∼2038)에서는 한국전력공사에 제출한 전기사용 신청 자료를 토대로 신규 데이터센터 물량을 추산했다. 12차 전기본 수립을 위해 4월에 내놓은 1차 전망에서는 방법을 바꿔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 대수 기반으로 별도 전망모형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재전망에선 어느 지역에 세우겠다는 내용만 있으면 기업 투자 계획대로 넣어준 것이다. 결국 한전 전기사용 신청 자료 기반 추산이나 별도 전망모형 모두 그럴싸한 포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문제는 이런 숫자놀음이 결과적으로 어떤 이들의 재산·환경·안전 등을 위협하고 특정 지역 내 갈등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예상 전력수요 급증으로 12차 전기본 내 신규 원전 반영이 확실시되고 이제 그 규모가 관건이 됐다. 대규모 발전설비가 들어오면 덩달아 송변전설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송전선로 갈등이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밑그림 위에 세워질 전기본은 이런 갈등의 장작이 될 뿐이다. 전력수요 전망부터 검증 가능한 절차로 재설계하는 걸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