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 인허가권을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에서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면서 자치구별 역량과 판단 차이에 따라 정비사업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자치구 권한을 확대하더라도 서울 전체 도시계획과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와 민주당은 전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서울의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의 정비사업은 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수립해 주민과 구의회 의견을 수렴한 뒤 서울시에 정비구역 지정을 요청하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시장이 최종 지정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당정은 500가구 이하 사업에 한해 최종 지정 권한을 구청장에게 넘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제도가 바뀌면 서울에서 추진 중인 소규모 정비사업 상당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서울시는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더라도 전체 사업 기간을 크게 단축하기 어렵고 오히려 난개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김동구 서울시 건축기획관은 “정비사업 전체 9개 인허가 권한 중 조합설립·관리처분 등 7개는 이미 자치구가 갖고 있다”며 “서울시가 행사하는 권한은 구역 지정을 위한 심의와 사업시행을 위한 통합심의 2가지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자치구별로 나뉘면 지역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져 서울 전체의 도시계획과 어긋나는 개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용도지역 상향 등 주요 도시계획 사항은 여전히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오히려 심의 체계가 이원화돼 행정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효과도 제한적이란 반응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담당하는 구역 지정 심의와 사업시행 통합심의에 걸리는 기간은 약 4개월이다. 전체 정비사업 기간을 12년으로 가정하면 약 2.7%에 불과하다. 현재 추진 중인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 193곳 중 구역 지정 단계에 있는 곳도 31곳(16%)에 불과하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치구가 정비구역을 직접 지정할 경우 사업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서울 전체 도시계획과 어긋나지 않도록 조정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비사업은 낡은 주택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도로와 공원, 녹지,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역할도 한다”며 “이를 개별 자치구에 넘겼을 때 얻는 이점과 우려를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여당이 제시한 ‘500가구’라는 기준으로 정비사업의 권한 체계를 나누는 것이 적절한지도 검토가 필요하다”며 “왜 500가구가 기준인지, 499가구와 501가구 사업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타당한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국가에선 기초 지방정부에 도시계획 권한을 부여하되, 광역 차원에서 계획과 조율하도록 제도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기초 지자체가 ‘지역도시계획’을 세우지만 여러 지역을 아우르는 광역 계획인 ‘영토통합계획’에 따르도록 한다. 개별 지역이 자체 개발계획을 세우되 주택·교통 등은 주변 지역과 함께 조정하도록 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자치구에 권한을 넘길 경우 서울시가 광역 차원의 조정자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형준 건국대 교수(건축공학)는 “구청을 거친 뒤 서울시와 다시 협의하는 한 단계를 줄인다는 점에서는 속도를 낼 수 있다”면서도 “각 자치구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서울시 전체의 발전 방향과 맞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500가구 이하 사업을 구청에서 처리하더라도 서울시가 전체 도시계획 차원에서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