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DB증권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지속가능금융 활동이 유엔(UN) SDGs 협회가 제출한 공식 의견서를 통해 유엔 지속가능발전 고위급 정치포럼(HLPF 2026)에 소개됐다. HLPF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주관으로 해마다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 점검을 위해 열리는 유엔 최고위급 정책회의로, 올해는 지난달 7∼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개최됐다. 이번에는 산업·혁신·인프라를 다루는 SDG 9번이 심층 검토 목표에 포함돼 금융기관의 역할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협회가 제출한 의견서는 2023년 곽봉석 대표이사 취임 후 DB증권이 추진해온 ESG 중심 경영전략을 비롯한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 사외이사 확대, 임직원의 탄소중립 활동, 가족친화기업 인증,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 녹색 금융상품과 기후대응전략 등을 소개했다. 특히 금융기관이 자본시장의 공급자를 넘어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을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DB증권 관계자는 “회사의 지속가능경영 노력이 유엔 공식 문서를 통해 국제사회에 소개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ESG 경영과 지속가능금융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이 DB증권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 증권사의 지속가능경영은 일회성 기부나 사회공헌을 넘어 금융 본업과 ESG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증권사들이 잇달아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기준을 선제로 반영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 공개하는 등 전 세계 공시 흐름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사회 산하 ESG위를 중심으로 구동체계를 운영하면서 탄소중립 전략으로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사행성 산업과 대부업 등 불건전 업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전통적 재무 위험 외 ESG 이슈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하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 통합하고 있다.
SK증권은 지속가능금융을 본업의 핵심 전략으로 끌어올렸다. 정준호 대표이사 체제에서 올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탄소금융·전환금융·ESG 통합·생산적 금융을 아우르는 ‘지속가능금융’을 별도의 장으로 구성했다. 2024년 말 기준 ESG 채권 주관 누적 실적은 415건, 16조5000억여원에 이른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밸류체인 전반(스코프·Scope 1·2·3)으로 공개하고, 생물다양성 분석을 담는 등 공시 수준을 높인 점을 인정받아 한국ESG기준원 평가에서 종합 A등급, 환경·사회부문 A+등급을 각각 받았다.
하나증권은 KSSB 기준을 선제로 반영해 공시 체계를 재편하고, 폐기물 자원 순환·신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산업군에 5346억원 등 친환경 투자를 확대했다. 국립수목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멸종위기종 ‘꼬리명주나비’의 복원 등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서울맹학교 시각장애 학생과의 나들이 행사에 임직원이 1대 1 멘토로 참여하고 보건실 환경 개선 비용을 후원하는 등 장애인 포용도 병행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포용금융에서 강점을 보인다. 청년과 현역 군인, 신혼부부 등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세전 연 5% 수익을 제공하는 사회초년생 전용 파생결합사채(ELB)를 지난해 39차례에 걸쳐 약 737억원어치 발행했으며, 증권사 최초로 금융감독원의 ‘상생·협력 금융 신상품’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서비스를 도입하고, 임직원과 시민이 함께한 걸음 수만큼 한강 생태계 보전 등에 기부하는 캠페인 ‘키움과 맑음’도 운영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을 공식화하고 2035년까지 직접 배출(스코프 1) 50%, 간접 배출(스코프 2) 30% 각각 감축한다는 중간 목표를 제시했다.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첫 인권 영향평가를 하고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했으며, 업무용 차량의 36%를 친환경 하이브리드로 전환했다. 기술 기반 중소·벤처기업 지원과 토큰증권(STO) 기반 혁신금융 등 사회적 가치를 연계한 활동도 확대하고 있다.
부국증권을 비롯한 중소형사도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정비와 공시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ESG 활동이 보고서 발간이나 사회공헌 행사에 그치지 않고 투자·인수 등 실제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 체계로 얼마나 내재화되는지가 활성화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SG위가 심의·보고 위주로 운영돼 실질적 의결 기능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사의 지속가능경영은 이제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다. 자금의 흐름을 설계하는 금융회사는 어느 산업보다 지속가능한 전환을 앞당길 지렛대를 쥐고 있다. 탄소·전환금융으로 저탄소 산업에 물꼬를 터주고, 포용금융으로 소외된 계층의 기회를 넓히는 한편 투자 판단에 ESG 리스크를 반영하는 일은 곧 SDGs가 지향하는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 성장과 맞닿아 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본업과 연계한 지속가능금융을 꾸준히 넓혀 간다면 그 성과는 개별 기업의 평판을 넘어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와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김정훈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UN SDGs 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