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년 800조원대 슈퍼예산, 나랏빚·물가 걱정스럽다

당·정, 3대 메가·청년·지방 등 집중
반도체발 초과세수가 재정 여력 키워
중복·유사, 선심성 사업 확 걷어내길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800조원대의 역대 최대규모로 편성하기로 했다. 올해 본예산보다 10% 이상 늘린 수준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처음 700조원대에 올라선 데 이어 1년 만에 다시 앞자리가 바뀐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눈앞의 재정수치 관리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라며 생산적 재정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팽창 일변도 재정이 나랏빚을 키우고 물가도 자극할 우려가 큰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당정은 어제 내년 예산을 인공지능(AI)·3대 메가프로젝트 등 미래 산업과 청년·지방정책에 집중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반도체 호황 덕에 늘어난 재정 여력을 첨단 기술 주도권 확보와 미래성장 동력 확충에 투입한다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반도체 특수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한번 늘어난 복지와 의무지출은 쉽게 줄이기 어렵다. 출생부터 18세까지 해마다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는 5년간 35조원가량이 소요되고 아동기본수당과 지방국립대 무상교육도 각각 연간 9조원, 4000억원이 든다. 업황 둔화로 세수가 쪼그라들어도 이 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만한 재정은 위험천만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일본조차 급격히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맨다. 빚 수렁에 빠져 툭하면 국채 금리발작사태까지 벌어지는 판이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경기도도 지난 10여년간 헤픈 씀씀이 탓에 재정위기에 몰렸다. 오죽하면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마른 땅에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고 했을까. 한국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1300조원을 넘어섰고 올해 1400조원대에 이른다. 경기도의 재정난이 나라 살림 전체로 번지지 말란 법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 추세라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이 올해 51.4%에서 2050년 200%까지 불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 엇박자도 우려스럽다. 한국은행이 얼마 전 통화 긴축으로 돌아섰는데 정부는 돈 풀기에 집착하며 물가와 부동산을 자극하는 형국이다. 반도체발 세수가 넘쳐도 후세나 다음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을 충분히 남겨두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꼭 필요한 곳에는 써야겠지만 한시적 초과 세수가 흥청망청 돈 잔치로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중복·유사사업은 확 걸러내고 선심성 지출도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