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인연이 만든 한글점자’…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100주년

강화서 63주년 추도식…시각장애인 자립에 평생 헌신
손자 “우연과 행운이 겹쳐 기적처럼 한글 점자 탄생”
제생원 맹아부 교사 시절의 박두성 선생(오른쪽). 송암 박두성 기념관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 교육에 뛰어들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든 박두성 선생을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다. 

 

박 선생은 시각장애인이 단순히 글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배움을 통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점자 보급과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25일 박두성 선생의 생가가 복원된 인천 강화군 교동면에서 박 선생의 63주년 추도식이 열렸다.

 

박 선생의 손자 박현재(84) 씨는 추도식을 앞두고 “할아버지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이 글을 읽는 것을 넘어 배워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셨다”고 회고했다.

 

◆ 우연히 시작한 맹인 교육…한글 점자 필요성 절감

 

박 선생이 처음부터 시각장애인 교육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에 대한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각장애인 학교인 제생원 맹아부를 설립하면서 기독교인 교사를 추천받았고, 당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박 선생이 교사로 이름을 올렸다.

 

어려운 형편에 타향살이를 하던 박 선생은 맹아부 교사가 되면 관사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부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두성 선생(가운데)의 모습. 국가유산청

그렇게 맹인 교육에 첫발을 내디딘 박 선생은 교육 활동을 하면서 한국 최초의 점자 교과서인 일본어 점자 교과서를 출판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말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는 점자가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미국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로제타 셔우드 홀이 개발한 4점식 한글 점자, 이른바 ‘평양점자’가 있었지만 한글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식민 통치가 강화되면서 조선어 교육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박 선생은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박씨는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우습게 봤고, 장애인들은 더 심하게 생각했다”며 “그래서 할아버지가 일본인 교사들과 많이 싸웠다고 할머니에게 자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 밤낮없이 연구해 만든 ‘훈맹정음’…점자 보급에 평생 바쳐

 

박 선생은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23년에는 제자 8명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각막염으로 실명할 뻔할 정도로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린 끝에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했고, 1926년 11월 4일 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훈맹정음 창안 사실은 조선총독부에 보고됐지만 별다른 제지나 탄압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한글 학자들이 잡혀가던 험한 시대였다. 우리도 고초를 겪을 수도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며 “시각장애인 교사 모집 공고가 우연히 조부 눈에 띈 것부터 일제가 한글 점자를 문제 삼지 않은 것까지 우연과 행운이 겹쳐 기적처럼 훈맹정음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의 점자표. 국립한글박물관

박 선생은 이후 성경과 문학작품, 역사책 등을 직접 점자로 번역해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등 점자 보급과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손자 박씨도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점자 보급 활동을 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할아버지 지시로 일반 책보다 몇 배나 두꺼운 점자책을 우체국에 들고 가 전국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냈다”며 “점자책은 우편 요금이 무료였는데, 할아버지는 제가 일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수증을 꼭 받아오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땐 왜 이렇게 하시나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야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 “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힘 줘야”

 

박씨는 할아버지가 한글 점자를 만든 이유가 단순히 시각장애인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배움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게 하는 것이 박 선생이 평생 추구했던 교육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박씨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지체장애인 등 모든 장애인이 단순히 지원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박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1962년 국민포장을 수여했고, 1992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1997년에는 한글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공식 문자로 고시됐으며, 2020년에는 관련 자료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