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고개를 숙였다. 1년8개월 넘게 경찰청장 직무대행체제를 이어가는 것을 두고 “(청와대의) 인사가 늦어져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홍 수석은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중수청 출범을 비롯한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앞두고 경찰 고위직 인사가 지연되는 상황을 지적하자 이처럼 답했다. ‘내란 사건’ 이후 경찰의 혼란을 들어 “개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인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은 예나 지금이나, 중앙이나 지방이나 예외가 아니다. 최근 경기도에서 벌어진 인사를 둘러싼 도 집행부와 노조, 시·군 간 이해충돌이 단적인 사례다.
도의 인사는 도정 동력을 확충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도지사의 고유 권한이지만, 도민·공무원 눈높이에 맞는 투명성과 적기(適期)성을 갖춰야 한다.
◆秋 지사의 강수 “가계부 마이너스…예산 재설계 전엔 인사이동 불가”
경기도가 재정 위기 극복과 조직개편을 이유로 올 하반기 정기인사를 내년 1월로 급작스럽게 연기하면서 도 안팎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추미애 지사는 “예산 재조정과 사업 재구조화가 인사보다 선행돼야 한다”며 배수진을 쳤으나, 공무원 노동조합은 “사상 초유의 반쪽 인사”라며 투쟁을 예고했다.
25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는 주말을 앞둔 지난 21일 오후 내부 공지를 통해 당초 8~9월 예정이던 정기인사를 5개월 미룬다고 발표했다. 조직진단을 통해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하고 부서 간 칸막이를 해소하는 조직개편을 먼저 진행한 뒤 인사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조직개편 전에 인사를 단행할 경우 단기간에 재배치가 되풀이되는 등 행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2~5급 간부 인사는 전면 보류됐고, 6급 이하만 결원 보충 차원에서 소폭 인사가 이뤄진다.
공직사회의 반응은 반발을 넘어 격분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도청공무원노조와 대한민국공무원노조는 전날 도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기는 국회가 아닌 경기도”라며 “인사권은 권력이 아닌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간부 인사가 배제된 채 실무진만 이동하는 구조를 두고 “업무 부담과 조직 혼란을 하위 실무자들에게 떠넘기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단체협약상 인사 제도 변경 시 사전 협의 의무가 있음에도 공지 불과 1시간 전에 일방 통보된 점을 지적하며 추 지사의 공식 사과와 결정 과정 공개, 정기인사의 즉각 시행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과정에선 도의 이번 결정을 두고 ‘인사만행’, ‘반쪽 인사’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노조·공직사회 격랑 “인사권은 권력 아닌 책임…즉시 정상화”
이번 인사 보류의 파장은 일선 지자체와 도정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파견 부단체장이 공석인 곳은 인구 90만의 성남을 비롯해 시흥, 광주, 이천, 양주, 가평, 포천의 7개 시·군에 달한다. 집중호우와 폭염 등 재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자체 컨트롤타워인 부단체장 부재가 장기화하면서 지역 행정의 불안감 역시 높아지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정 편의를 위해 기초지자체의 행정 공백을 방치하고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성남시도 입장문을 내고 “공백이 장기화하면 의사결정과 현장대응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황을선 성남시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도와 시·군이 함께 추진해야 할 주요 사업들이 부단체장 공석으로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며 “인사가 멈추면 행정의 의사결정도 멈춰 도민 피해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공직사회의 불만은 법률에 명시된 중장기 법정 의무계획 수립 용역마저 일괄 중단되면서 팽배하고 있다. 일률적 재정 구조조정 여파로 ‘자전거 이용 활성화 5개년 계획’, ‘제2차 토양보전계획’, ‘제5차 환경보전계획’ 등이 가로막힌 것이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시·도지사가 5년마다 자전거 도로망 구축, 안전교육, 개인형 이동장치(PM) 관리 등을 담은 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제2차 경기도 토양보전계획(2027~2036년)도 10년 단위 법정계획이다. 제5차 경기도 환경보전계획(2018~2027년) 역시 ‘환경정책기본법’에 근거한 최상위 10년 단위 정책이다.
도 내부에선 단순 행사·용역과 필수 법정계획을 구분하지 않은 구조조정으로, 내년도 행정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거친 재정 구조조정에 도정 마비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재정난 극복 명분과 행정 공백 충돌…정무적 시험대 올라
논란이 커지자 추 지사는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인사 연기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그는 “도 가계부를 인계받아 점검해 보니 용처가 정해진 기금까지 끌어 쓰고 채권 발행으로 빚만 쌓여 있는 상태”라며 “부서 간 칸막이로 비슷한 사업이 중복되고 민간 위탁으로 예산이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 성과를 평가하고 필수 예산 중심으로 재조정 절차를 마칠 때까지 누구도 자리를 옮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사무의 점검과 재설계가 인사보다 선행될 수밖에 없다. 조직개편도 시급하다. 이 같은 문제를 공유하면서 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인내와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홍은광 경기도 대변인 역시 서면 브리핑에서 “조직 혁신과 책임 의식이 빠진 인사는 재정 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재정 정상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명분과 공직사회의 반발, 행정 공백 우려가 강하게 충돌하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노조가 전 조합원 연대 투쟁을 예고한 가운데 도의회와의 예산 심의 협조, 시·군과의 신뢰 회복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하면서 민선 9기 추미애호의 도정 운용 역시 거센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