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한 판을 주문하면서 5000원을 더 낸다. 할인 때문이 아니다. 게임 캐릭터가 담긴 블록과 포토카드, 게임 아이템을 받기 위해서다.
고물가에 외식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유통업계가 게임과 애니메이션 지식재산권(IP)에 빠졌다. 단순히 캐릭터를 포장지에 넣는 수준을 넘어 한정판 굿즈와 게임 아이템, 전용 매장까지 결합하면서 충성도 높은 팬덤을 소비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도미노피자는 오픈월드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명조: 워더링 웨이브’와 손잡고 다음 달 17일까지 ‘명조 굿즈 스페셜 딜’을 진행한다.
도미노피자 온라인 채널에서 대상 라지(L) 피자 9종 가운데 하나를 주문한 뒤 5000원을 추가하면 한정 굿즈와 코카-콜라 1.25L를 함께 받을 수 있다. 굿즈는 스페셜 블록과 포토카드, 게임 쿠폰 등으로 구성됐다. 준비 물량이 소진되면 행사가 조기 종료될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할인보다 ‘소장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피자를 싸게 파는 대신 게임 이용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 한정 상품을 붙여 구매 이유를 만들었다.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까지 제공하면서 오프라인 소비를 다시 게임으로 연결했다.
도미노피자는 게임 캐릭터를 적용한 한정 피자 박스까지 선보였다. 평소 피자 브랜드를 이용하지 않던 게임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자사 앱으로 주문을 유도하는 효과도 노린 셈이다.
맘스터치와 스마일게이트의 MMORPG ‘로스트아크’는 이미 네 번째 손을 잡았다.
이달 선보인 ‘모코코 썸머 바캉스 세트’에는 싸이버거와 후라이드 빅싸이순살, 콜라뿐 아니라 로스트아크 컬렉션 카드와 모코코 스프링 피규어,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페셜 쿠폰이 포함됐다. 단순 식사 세트에 게임 팬들이 수집할 만한 요소를 여러 겹으로 붙였다.
반복 협업이 가능한 이유는 팬덤의 구매력이 실제 판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맘스터치가 2024년 로스트아크와 협업해 판매한 ‘모코코 맘스 세트’는 출시 4일 만에 준비 물량의 약 70%가 팔렸고 일부 매장에서는 조기 품절이 발생했다. 식품과 게임이라는 서로 다른 업종의 결합이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실제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프랭크버거는 한발 더 나갔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전략 RPG ‘명일방주: 엔드필드’와 협업해 ‘무릉성 세트’, ‘엔드필드 공업 세트’, ‘세쉬카 사이드 세트’ 등을 판매했다.
세트 구매 고객에게 장패드와 아크릴 스탠드, 아크릴 키링, 게임 쿠폰이 담긴 포토카드 등을 제공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촌서강대점과 반포신논현점, 명지대점 등 전국 12개 매장을 게임 테마로 꾸몄다. 일부 매장에서는 별도 오프라인 행사도 열었다.
게임 속 세계관을 메뉴와 굿즈뿐 아니라 실제 매장 공간까지 가져온 것이다. 소비자가 햄버거를 먹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굿즈를 모으고 이를 다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도록 접점을 넓혔다.
게임 IP 경쟁은 외식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팔도는 이달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리니지 클래식’ 캐릭터를 적용한 왕뚜껑 한정판을 내놨다. 제품 안에는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쿠폰이 들어갔다. 소비자가 왕뚜껑을 사면 현실의 컵라면과 게임 속 아이템을 동시에 얻는 구조다.
편의점 이마트24는 애니메이션으로 영역을 넓혔다.
인기 애니메이션 ‘브레드이발소’와 협업해 갈릭에그햄치즈 샌드위치부터 초코빨미까레, 복숭아 케이크, 밀크소다, 브라우니, 도넛까지 6종을 내놨다.
상품 구매 고객이 앱에서 스탬프를 모으면 추첨을 통해 브레드이발소 굿즈와 숙박권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마트24는 어린이뿐 아니라 10~30대까지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IP라는 점을 협업 배경으로 꼽았다.
업계가 IP 협업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고물가로 달라진 소비 환경이 있다.
가격 할인만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캐릭터와 관련된 한정 상품에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팬덤 소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점이 있다. 게임사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해 이용자와 접점을 늘리고, 식품·외식업체는 기존 고객층 밖에 있던 게임·애니메이션 팬을 새 소비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
최근 협업 방식이 캐릭터를 포장지에 넣는 데 그치지 않고 굿즈와 게임 쿠폰, 한정 메뉴, 팝업 매장까지 확대되는 이유다.
결국 불황 속 식품업계의 마케팅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싸게 파느냐’의 경쟁에서 ‘돈을 더 내더라도 갖고 싶게 만드느냐’의 경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