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북한도 신뢰했던 ‘남쪽 사람’, 명진 스님

‘운동권 스님’이 품었던 민족애
소년 한기중과 영어 선생님의 인연
금강산 가는 버스에서 다시 만나다
남과 북을 향해 울릴 신계사 범종

명진 스님이 많은 이의 애도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다. 25일 법주사에서 다비식이 봉행되면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나흘간의 장례 절차도 마무리됐다. 한때 ‘좌파 스님’, ‘운동권 스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고, 자신이 몸담았던 조계종에서 승적까지 박탈당했던 그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애잔했다. 앞서 서울 강남 봉은사에 마련된 빈소에는 종교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모 메시지에서 지난해 명진 스님이 “남북 평화를 위해 대통령이 길을 열어달라”고 당부했던 일을 떠올렸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 스님은 1969년 출가했다. 50안거 이상 수행하면서도 세상이 아프다고 느낄 때는 산문 밖으로 나왔다. 그를 ‘운동권 스님’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5·18 광주의 참상을 담은 비디오였다. 이를 본 뒤 민주화운동과 조계종 개혁 등에 뛰어들었다. 권력과 종단을 향한 비판으로 2017년 승적을 박탈당했으나 법정 다툼 끝에 올해 되찾았다. 그러나 명진 스님을 민주화운동가로만 기억한다면 다른 한쪽을 놓치게 된다. 그에게는 유난히 강한 민족애가 있었다. 조계종의 남북교류 창구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지내며 남북교류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 시절 남북교류의 상징은 금강산 신계사였다. 한국전쟁 때 불탄 고찰을 남북 불교인들이 함께 복원했다. 끊어진 민족의 법맥을 잇는 일이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기자에게는 신계사를 떠올릴 때 잊히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문난영 전 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이다. 1965년 대학을 갓 졸업한 문 회장은 통일교 개척전도를 위해 충남 당진 송악면으로 내려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 유난히 눈에 띄던 한 소년이 있었다. 한기중. 훗날의 명진 스님이다. 소년은 선생님을 잘 따랐다. 세월은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로 데려갔다. 한 사람은 불교의 선승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통일교 여성운동 지도자가 됐다.



두 사람은 수십 년 뒤 기막힌 곳에서 다시 만났다. 2004년 금강산 신계사로 향하던 버스 안이었다. 민화협 공동의장 자격으로 방북하던 문 회장에게 한 스님이 다가왔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문 회장은 얼굴을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너, 기중이 아니냐?” 주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유명한 명진 스님을 대뜸 속명으로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싶었던 것이다. 명진 스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문 회장이 회원들과 봉은사를 찾기도 했고, 명진 스님이 여성연합을 방문하기도 했다. 함께 북한에 갈 때면 명진 스님은 나이 든 스승의 여행가방을 들어주었다. 주변 사람들이 문 회장에게 핀잔을 줄 정도였지만, 명진 스님에게 문 회장은 여전히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이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종교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진은 평생 불교의 길을 걸었지만 옛 스승의 종교를 밀어내지 않았다. 문선명 총재가 펼친 세계평화운동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고 문 회장은 기억했다. 최근 통일교가 처한 상황에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특정 교단에 대한 변론이라기보다 세상의 잣대로 다른 종교를 쉽게 재단하지 않던 수행자의 태도로 읽힌다. 명진 스님 자신도 ‘좌파’,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규정돼 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삶과 신념을 몇 글자의 낙인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문 회장은 “내가 아는 명진 스님은 정의로운 사람”이라며 “그러니까 평소에도 쓴소리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명진 스님에 대한 북한의 평가도 남달랐다고 한다. 문 회장은 방북 당시 북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남쪽 사람 가운데 북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불교를 사랑하는 일과 민족을 사랑하는 일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스님은 이제 없지만, 언젠가 금강산 길이 다시 열린다면 그곳의 범종도 남과 북을 향해 다시 울릴 것이다. 명진 스님, 부디 그날을 지켜봐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