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7510표, 반대 7535표.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가 지난 25일 마감한 2026년도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 투표는 25표 차이로 갈렸다.
반대 50.08%, 찬성 49.92%. 선거인 1만6038명 가운데 1만5045명이 참여해 투표율은 93.81%에 달했다. 표가 많이 몰렸는데도 승부는 코앞에서 뒤집혔다. 표심을 가른 건 결국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방식이었다.
◆250조 벌면 PS 25조…‘7억원’은 평균일 뿐
올해 SK하이닉스 실적은 지난해와 견주기 민망할 정도로 뛰었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2분기 매출은 79조3187억원, 영업이익은 60조5426억원. 영업이익률이 76%였다. 1분기 실적을 더한 상반기 누적 매출은 131조8950억원, 영업이익은 98조1529억원에 이른다.
증권가 전망대로 연간 영업이익이 250조원 안팎에 이른다고 가정하면,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쓰는 PS는 25조원 규모가 된다.
이걸 전체 임직원 약 3만5000명으로 단순히 나누면 1인당 7억1400만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올해 영업이익을 250조~290조원대까지 보는 전망도 나온다.
7억원은 실제 평균 지급액도, 모든 직원이 똑같이 받는 확정액도 아니다. 특정 영업이익 전망치를 전체 인원 수로 나눈 산술적 추산일 뿐이다. 실제 PS는 직급과 개인별 평가에 따라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이 숫자를 단순히 ‘내가 받을 돈’으로 볼 순 없다.
◆문제는 액수가 아닌 ‘지급 방식’
이제 노사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노사가 지난 20일 마련한 잠정합의안의 뼈대는 이랬다. PS의 40%는 현금으로, 나머지 60%는 자사주로 지급한다. 자사주 지급분 중 40%는 받는 즉시 팔 수 있고, 나머지 20%는 1년 뒤와 2년 뒤 각각 10%씩 나눠 이연 지급하는 구조다.
제도 도입 첫해에는 예외를 뒀다. 내년 초 지급되는 2026년도분 PS에 한해, 당해 지급되는 자사주 40%를 현금으로 바꿔 받을 수 있게 했다. 기본 현금 지급분 40%와 합치면 첫해에는 최대 80%까지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주가 하락 위험을 낮추는 장치도 넣었다. 지급 주식 수를 계산할 때 연간 잠정실적 공시일, PS 현금 지급일, 자사주 지급일 종가 가운데 가장 낮은 값을 적용하기로 했다.
증권사와 업무협약을 맺어 주식 매매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안도 담겼다. 이연되는 20%는 ‘주식 수’와 ‘지급액’ 중 하나를 직원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주말 사이 사측은 추가 카드도 꺼냈다. 주식 손실 보전금에서 발생하는 세금까지 회사가 보전해주는 방안을 새로 얹었다. 그런데도 25표가 부족해 문턱을 넘지 못했다.
◆10년 쓰겠다던 제도, 1년 만에 손댄 게 문제였나?
갈등의 뿌리는 지난해 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9월 PS 상한을 없애고 매년 영업이익의 10% 전체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는 새 체계를 도입했다.
산정액의 80%는 당해 연도에 현금으로, 나머지 20%는 1년 뒤와 2년 뒤 각각 10%씩 역시 현금으로 이연 지급하기로 했다. 이 체계는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기존에도 직원이 원하면 PS 일부를 자사주로 바꿔 받는 ‘주주참여 프로그램’은 있었다. 최대 50%까지 자율적으로 주식을 선택하고, 일정 기간 보유하면 추가 인센티브를 받는 방식이었다. 핵심은 어디까지나 ‘선택’이었다.
이번 잠정안은 결이 다르다.
PS의 60%를 자사주 지급의 기본값으로 못 박았다. 지난해 10년을 약속한 제도가 1년 만에 통째로 바뀌자,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현금이냐 주식이냐를 넘어 ‘이 회사가 작년에 한 약속을 믿어도 되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지난 13일 출범한 통합노조도 기존 합의대로 PS를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며 자사주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통합노조는 지난 24일 사측에 공문을 보내 현금 지급 관행을 주식으로 바꾸려는 구체적 사유와 재무·회계상 근거, 원금 손실 위험 대책 등을 요구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이 노조는 지난 13일 출범 당시 조합원 2400여명으로 시작해 23일 오후 기준 3432명까지 늘었다. 이후에도 가입이 이어지며 26일 현재 3400명대 후반까지 불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재협상 국면의 또 다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사무직은 66.2% 찬성…노조마다 ‘표심’이 갈렸다
같은 잠정안을 놓고 노조별 판단은 엇갈렸다. 이천·청주 전임직 노조에서는 반대가 찬성보다 25표 많아 부결됐지만, 약 900명 규모의 기술사무직 노조는 같은 날 오후 찬성률 66.2%로 잠정안을 가결했다.
전임직 노조에서도 찬성률이 49.92%였다. 구성원 전체가 자사주 성과급 자체에 반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사무직에서는 3명 중 2명가량이 찬성했고, 전임직에서도 사실상 절반이 동의했다. 자사주 지급 여부 그 자체보다, 지급 비율과 현금 선택권을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표심을 가른 셈이다.
전임직 노조가 부결하면서 노사 전체는 재협상 수순에 들어갔다. 노사는 3개 노조 중 한 곳이라도 부결하면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협상에서는 PS의 자사주 지급 비율과 현금 선택권이 다시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점 대비 42% 하락…주주가 보는 풍경은 사뭇 달라
주주들이 보는 그림은 또 다르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6월22일 291만9000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종가 기준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이후 두 달여 만에 40% 넘게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억원대 성과급을 현금과 주식 중 어떤 방식으로 줄지를 놓고 갈등이 이어지자, 임직원 보상과 주주가치 사이의 균형 문제도 함께 부각됐다.
그렇다고 회사가 주주환원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어 40조43억4000만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한 뒤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 결의 전날인 18일 종가 166만2000원을 기준으로 약 2407만주, 발행주식 총수(약 7억3049만주)의 3.3% 규모다. 취득 기간은 지난 20일부터 오는 11월19일까지이며,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소각 사례 중 최대 규모다.
SK하이닉스는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 기준 주주환원 목표도 기존 ‘50% 범위 내’에서 ‘50% 이상’으로 높이고, 자사주 취득·소각과 현금배당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PS 25조원과 자사주 40조원을 단순히 ‘직원 몫 대 주주 몫’으로 맞세우는 건 정확한 비교는 아니다. 성과급은 임직원 보상 비용이고, 자사주 취득은 자본거래로 성격 자체가 다르다.
회사가 역대급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성장 투자·임직원 보상·주주환원에 어떻게 나눌지라는 더 큰 자본배분 문제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
회사는 자사주 성과급이 구성원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장기적으로 묶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직원이 회사 주식을 들고 있으면 기업가치가 오를 때 그 과실을 주주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논리다. 회사는 이번 개편에 “구성원이 주주와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셈법이 달라진다. 주가 변동성이 큰 시기에 현금 대신 주식을 받으면 앞으로의 가격 하락 위험까지 떠안아야 한다. 특히 일정 기간 뒤 지급되는 이연분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
◆재협상 관건은 주식이냐 현금이냐보다 ‘비율’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노사는 PS 지급 방식을 다시 조율해야 한다. 핵심은 현금과 자사주의 비율, 이연 지급 조건, 현금 선택권, 주가 하락 위험을 얼마나 보완하느냐다. 통합노조가 PS 100% 현금 지급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는 2023년과 2024년에도 잠정합의안을 한 번 부결시킨 뒤 재협상을 거쳐 다시 합의안을 만든 전례가 있다. 이번엔 찬반 격차가 25표에 불과했던 만큼, 제도 전체를 백지화하기보다 자사주 지급 비율이나 현금 선택권을 손질해 재표결에 부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번 투표를 “직원들이 1인당 7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보면 숫자의 절반만 본 셈이다. 7억원은 특정 영업이익 전망을 전체 임직원 수로 나눈 가상의 평균값일 뿐이다.
투표 대상에는 임금 6.3% 인상, 복지포인트(하이웰) 연 240만원→360만원 확대, 교대근무 수당 인상 등 다른 내용도 함께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전임직 노조의 49.92%는 잠정안, 기술사무직 노조에서는 66.2%가 찬성했다. PS의 자사주 지급이 최대 쟁점이었던 건 맞지만, 25표 차 부결을 ‘전액 현금 요구’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지난해 10년간 유지하기로 한 성과급 체계의 지급 수단을, 불과 1년 만에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회사는 현금 중심 보상을 주식 기반 보상으로 넓혀 구성원과 주주의 이해관계를 장기적으로 묶으려 한다. 구성원들은 그 과정에서 기존 합의의 이행과 예측 가능성, 현금 선택권을 요구하고 있다.
역대급 실적이 오히려 더 어려운 숙제를 던진 셈이다. 얼마를 나눌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나눠야 구성원과 주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느냐가 남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