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을 직접 채취하거나 대장내시경 전 장을 비우는 과정 없이 채혈만으로 대장암을 선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혈액 속 세포유리DNA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 환자를 90% 이상 찾아냈으며, 초기인 1기 대장암에서도 84.2%의 민감도를 보였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은 액체생검 및 임상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GC지놈과 함께 대장암 환자와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정상인을 대상으로 세포유리DNA 혈액검사의 성능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대장암 환자 302명,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 등 총 1677명의 혈액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채혈을 통해 혈액 속 세포유리DNA를 추출한 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으로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DNA 절편의 길이와 말단 구조, 유전체 분포 등의 정보를 AI 딥러닝 모델로 분석했다.
세포유리DNA는 혈액 속에 존재하는 DNA 조각으로,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는 정상세포에서 나온 DNA와 절단 위치나 길이, 말단 구조 등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성을 AI가 분석하도록 해 혈액만으로 대장암 여부를 예측하도록 했다.
그 결과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의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 특이도는 94.7%로 나타났다. 대장암 환자 10명 가운데 약 9명을 찾아내고, 정상인 100명 가운데 약 95명을 정상으로 판별한 셈이다.
병기별로도 비교적 높은 진단 성능을 보였다. 1기 대장암의 민감도는 84.2%, 2기는 85.0%, 3기는 94.4%, 4기는 100%였다.
내시경 치료가 가능한 초기 대장암은 90%의 민감도로 검출했으며, 대장암으로 진행하기 전 단계인 진행성 대장용종은 58.3%의 민감도로 찾아냈다. 자료에 따르면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진행성 대장용종 민감도는 25~40% 수준이다.
현재 국가 대장암 검진에서는 채변을 통한 분변잠혈검사가 기본 검사로 활용된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44.4%로 주요 암종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변을 직접 채취해야 하는 분변잠혈검사와 검사 전 장을 비워야 하는 대장내시경에 대한 부담 등이 검진 참여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혈액을 이용한 대장암 선별검사가 기존 검진의 불편을 줄이는 대안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변정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 소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 검진 과정에서 느꼈던 부담감을 줄이고 혈액검사만으로 편리하게 대장암을 선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인공지능 딥러닝 모델을 활용해 혈액검사법의 정확도를 향상시킨 것처럼 앞으로 다양한 의료 분야에 AI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20~40대에서 대장암 발생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혈액진단의 편의성과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 보다 편리하게 대장암 검진이 가능하다”며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내시경 절제술 등 최소침습적 치료가 가능해 생존율과 치료 후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소화기학회지(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