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마주 앉은 사람

사십년 만에 방문한 옛 자취집
방도 정원도 모두 그대로인데
백발이 된 주인장을 마주하니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열일곱 살 때 이 집에 셋방을 얻어 일 년 남짓 자취했다. 할머니가 대문을 열어줄 때 나는 그 사연을 밝혔다. 노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십 년 만이니 당연하다. 더구나 행랑채 방 네 칸에 드나든 자취생이 좀 많았을까. 그럼에도 노인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맞는다. 그렇다고 몹시 반기는 기색도 없다. 만사가 힘에 부치는 노인처럼 무력하고 무심해 보인다.

나는 여러 날 산책길에 이 집 앞에 서곤 했다. 문패를 보고 주인 내외가 여전히 집을 지키고 산다는 걸 알았고, 내가 머물던 방 창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가움보다 더한 마음이 일었는데 그립고 또 쓸쓸한 걸 보면 향수였다. 몸이 먼저 반응하듯 대문 앞에서 소년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인기척 없는 집 안을 기웃거리곤 했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향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나는 끝내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불쑥 옛사람을 찾았다가는 섭섭해지기 십상이다. 상대는 경계부터 한다. 상대방을 탓할 일은 아니다. 기억에 없는 사람이 과거의 인연을 들먹이며 나타나는 데 반가운 마음이 앞설 리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집 앞에서 돌아서곤 했는데 오늘은 “누구요?” 하고 불쑥 대문이 열린 것이다.



아담한 정원 역시 외양이 그대로다. 회양목 울타리에 철쭉과 동백이 다듬어져 자라고 있다. 자리를 많이 차지했던 무화과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가 교사였는데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내가 집에 다녀오는 길에 유자나무 묘목을 구해다가 드린 적도 있다. 유자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지붕 한 귀에 푸른 비닐을 올려 덮어놓고 있다.

노인과 거실에 마주 앉는다. 주인집 거실에 앉아보는 건 처음이다. 등나무 의자와 식탁, 장식장이 옛것이지만 고급스럽다. 그렇지만 가구들은 한옥 거실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가정이 중산층의 삶을 추구해 왔다는 흔적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도회지 중산층의 삶을 엿보았다.

노인이 차를 내오는 동안 그 집 가족사진을 본다. 딸 셋에 늦둥이로 아들을 둔 다복한 가정이었다. 이 집에 머물 때 큰딸은 집을 떠나 대학에 다녔고, 딸 둘은 나처럼 고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인 늦둥이 아들이 집을 휘젓고 다녔다. 그 아이가 나를 형처럼 따랐다. 가족사진에는 성년의 자녀들이 담겨서 기억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노인은 대접할 게 없다고 말하며 인삼차를 내놓는다. 노인의 말투에는 특유의 예의가 배어 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사모님 어투라고 짐작한 적이 있다. 문득 노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도 있었다는 걸 나는 깨닫는다. 내가 한 해만 살고 이 집을 떠난 건 이 안주인과의 갈등 탓이었다. 계약 연장을 앞두고 어머니가 친정쪽 친척 아이 하나가 이 도시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나와 함께 자취하기를 권했다. 불편한 일이지만 방세를 아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방세를 올리겠다고 막아섰다. 한 사람이 더 들면 방세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왔다. 어머니는 방을 하나 더 내 달라는 게 아닌데 방세를 올려 달라는 거냐고 따졌다. 내심 주인집에 철마다 푸성귀를 보내던 인정도 무시하는 처사가 얄미웠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막무가내인 어머니와 설전을 벌였다. 수도료랑 전기료, 분뇨 수거료가 느는데 당연히 방세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짐짓 우리를 몰상식한 사람 취급하는 시선에 눌렸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 그만해요. 아주머니 말이 옳아요.” 어머니가 말문이 막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키워 놓은 아들이 남의 편이 되어 제 어미를 몰상식한 시골 사람으로 몰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평생 그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모자간에 그 일을 다시 들먹거린 적은 없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내내 섭섭했을 것이다.

노인은 아저씨가 은퇴하고 곧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노인이 혼자 이 집을 지키며 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제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 우리는 가족 얘기를 더 하지 않고 차를 마신다. 어서 일어나고 싶은데 차가 얼른 식지 않는다.

 

전성태 소설가·국립순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