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위해 법정은 물론 거리에서도 싸웠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원칙과 소신을 지켰던 정치인. 권위주의와 맞서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고 끝내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얻은 대통령. 각자의 기억 속에 흩어져 있던 인간 노무현의 여러 얼굴을 하나의 생애로 다시 연결한 평전이다.
저자는 노무현의 말과 선택을 어느 한순간의 돌출된 행동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사람과 관계,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을 함께 살피며 왜 그런 말을 했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추적한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저자와 노무현 사이의 특별한 관계다.
윤태영/위즈덤하우스/4만9500원
1988년 스물일곱살이던 저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 옮긴 출판사에서 노무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94년 노무현의 첫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출간 작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그의 말과 글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이 봉하마을로 돌아간 뒤에도 집필팀으로 일했다.
2001년부터 서거 직전까지 그의 말과 생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기록하고 문장으로 옮긴 필사이자 복심이었다. 저자는 노무현을 사후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살아 있던 순간의 공기와 맥락까지 복원한다.
이처럼 세밀한 복원이 가능한 것은 노무현 자신이 기록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그는 저자에게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자리에 배석해도 좋다”고 했다. 독대를 줄이고 업무의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과 함께 대통령 자신을 기록으로 경계하려는 뜻도 있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자리에 배석하며 노무현이 보고 듣고 말한 순간들을 600여 권의 포켓수첩과 1000개의 파일에 기록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구술과 연설문, 참여정부 참모들이 남긴 메모와 녹취, 비망록 등 160여 개의 비공개 기록까지 더해졌다.
저자가 단순한 ‘목격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노무현의 언어를 다듬고 그의 생각을 문장으로 옮겼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떤 논리로 판단하는지, 어떤 표현을 선택하고 버리는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측근의 회고록을 넘어선다. 노무현의 말과 글, 생각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내부자의 기억과 방대한 기록이 결합하면서 다른 평전에서는 얻기 어려운 밀도를 갖는다.
그렇게 평전은 한 소년이 인권변호사로 성장해 ‘청문회 스타’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 뒤 대통령 재임기의 주요 선택을 사건별로 파고든다. 북핵 문제와 대연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참여정부를 뒤흔든 쟁점들이 그 대상이다. 이후 봉하마을 귀향과 마지막 시간을 거쳐 노무현의 리더십과 성격, 말과 글을 별도로 들여다본다.
이 평전의 미덕은 노무현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가까이에서 그의 강점과 약점, 판단과 오판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만이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노무현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이해하면서도 그 선택이 왜 실패했는지를 되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