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10 총선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역사상 첫번째 국회는 통상 ‘제헌 국회’로 불린다. 헌법에 의해 구성된 국회가 아니고 헌법을 만들기 위해 소집된 국회라는 뜻이 담겨 있다.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 앞에는 2년 임기 동안 헌법은 물론 국회법, 정부조직법, 법원조직법, 국가공무원법, 국군조직법 등 신생 공화국의 기틀이 될 핵심 법률들을 신속히 제정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놓였다. 1950년 6월2일 폐원(閉院)한 제헌 국회의 남은 과제들은 그로부터 보름 뒤인 6월19일 개원한 2대 국회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불과 엿새 만에 6·25 전쟁이 터졌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는 날짜로 1950년 6월25일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남한의 총선 그리고 새 국회 출범 직후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전쟁의 와중에 정부가 임시 수도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던 1952년 8월5일 전국 단위 선거가 실시됐다. 대통령 선출 방식을 국회에 의한 간선제에서 국민 직선제로 바꾼 헌법 개정 후 첫 대선이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압도적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다. 흔히 이를 ‘이 대통령 독재의 서막’으로 여겨 폄훼하기도 하지만, 전쟁 같은 국난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열망도 일부 반영됐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 이후 4년6개월 넘게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2019년 5월 취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024년 5월 헌법에 따른 5년 임기가 만료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대선을 치르지 못하는 가운데 젤렌스키는 벌써 2년 이상 임기가 연장되고 있다. 개전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헌법은 ‘계엄 하에선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점을 들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합법적 대통령이 아니다”며 “종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을러댄다.
초반에는 계엄령 지속과 선거 연기를 당연하게 여겼던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선 슬슬 피로감이 감지되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젤렌스키 밑에서 요직을 거쳤으나 지금은 결별한 미하일로 페도로우(35) 전 국방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페도로우는 최근 “장기화된 전쟁 속에서도 민주적 절차를 회복해야 한다”며 젤렌스키에게 대선 실시를 촉구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전쟁 상황에서 당장 선거를 치른다면 우크라이나를 분열시킬 쓰나미가 된다”고 응수했다. 6·25 전쟁 중에도 대선을 실시한 한국의 경험이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