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KF-21 전투기 개발을 마친 한국의 항공산업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미국·유럽에서 개발중인 첨단 6세대 전투기 확보를 위한 사전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개념연구’ 입찰공고를 냈다.
방위사업청은 입찰제안서에서 “고도화되는 미래 위협과 전 영역 통합작전 환경에 대응하고자 유·무인복합전투체계, 광대역 스텔스, 인공지능(AI) 기반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운용개념과 작전운용성능을 정립, 최적의 형상(안)을 도출한다”고 연구용역 목적을 설명했다.
차세대 전투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공군력 전력구조 발전방향 제시도 과제에 포함됐다.
용역 수행기간(14개월)을 감안하면 2028년쯤 연구결과가 제시될 전망이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6세대 전투기 도입이 진행되면, 기존 기술 기반과 공군력 구조를 대폭 바꿀 계기가 될 전망이다.
◆6세대급 스텔스 설계 요소 명문화
이번 연구용역 입찰제안서에선 6세대 전투기의 핵심 기술들이 구체적으로 포함됐다.
전통적 외형을 지닌 4.5세대 기종인 KF-21과는 전혀 다른 기체를 상정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방위 저피탐 기술이다.
기존 스텔스기는 정면의 레이더 반사면적(RCS) 최소화만 이뤄졌다.
하지만 전방위 저피탐 기술에선 전방·측면·후방을 포함한 모든 각도에서 RCS를 최소화한다.
적외선과 음향 및 전자파 방출도 대폭 낮춘다. 이에 맞춰 기체 외형과 구조 및 재질을 설계한다.
우선 수직꼬리날개가 사라지거나 크기가 매우 작아진다.
수직꼬리날개는 레이더 전자파를 많이 반사한다. 따라서 F-47처럼 수직·수평꼬리날개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무미익 스텔스 기술이 6세대 전투기에 적용된다.
다만 무미익 기술은 기체 급기동과 안정성 확보 수단을 없애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교한 비행제어 소프트웨어 등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이는 기체 설계를 매우 어렵게 한다.
방위사업청의 연구용역 입찰제안서에서 미익 제거 시 조종안정성 보완사항 제시를 요구한 것도 이같은 난제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엔진의 압축기 날개가 정면에서 직접 보이지 않도록 공기흡입로는 S자로 구부리는 기술도 필수다.
해당 기술은 냉전 시절인 1960년대의 초보적 기술도 해외이전이 엄격히 통제되는 핵심 기술이다.
레이더파가 공기흡입로를 거쳐 엔진 압축기 날개에 도달하면, 높은 수준의 반사가 발생한다.
따라서 F-22·35는 S자 형태의 공기흡입로를 사용한다.
6세대 전투기는 이를 더 정교하게 구성한다. 기존 5세대 기종보다 많은 양의 공기를 흡입하면서도 레이더 반사 면적은 더욱 낮추는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항공기, 저고도·장거리 조기경보레이더, 사격통제레이더 등에 쓰이는 다양한 주파수 대역에 대한 저피탐 성능도 필수다.
특정 파장에 최적화된 설계가 다른 파장에선 RCS를 높이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내부무장창과 기체 표면의 단차를 최소화하는 작업도 추가된다.
고효율 가변사이클 엔진 요구도 입찰제안서에 포함됐다. 해당 엔진은 비행방식에 맞춰 작동 방식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첨단 엔진이다.
상황에 따라 고속 전투와 장거리 비행 모드를 실시간으로 전환, 동일 기체로도 장거리 항속능력과 고기동성을 겸비하게 한다.
이는 모드 전환 시 추력 단절 없이 엔진을 통제하는 고난도 디지털 엔진제어 기술과 터빈 날개의 내구성 확보 등을 요구한다. 현재 미국 등 극소수 국가만이 관련 기술을 갖고 있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가 이같은 기술을 모두 갖춘다면, 5세대 스텔스기인 F-35의 취약점이었던 대공레이더 대응 능력이 개선될 수 있다.
전선에 있던 기체가 교전 후 후방으로 이탈할 때, RCS 면적 증가로 인한 적 레이더 포착 위험은 낮아진다. 교전→이탈→재접근 과정에서 생존성이 높아진다.
미래 한반도 상공을 위협하는 주변국의 첨단 전투기를 상대할 수 있는 전략적 능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미래 위협 인식도 드러나
입찰제안서에서 엿볼 수 있는 또다른 부분은 공군이 바라보는 위협의 형태다.
어떤 것이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가를 식별하는 것은 전력증강사업에서 기초적인 요소다.
북한 위협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신형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공대공·지대공미사일 등을 개발하면서 낙후된 방공망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전투기들이 북한 내륙으로 침투해 공습을 감행할 때, 생존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KF-21, KF-16 등의 전투기로는 이같은 공습을 하기가 어렵다.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으로 북한 방공망 밖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원거리 타격전 또는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지닌 기종을 앞세우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북한 위협만 감안하면 F-35A로도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 동향이 문제다.
중국은 청두항공기공업그룹(CAC)이 J-36 6세대 전투기를 개발중이다. 2024년 첫 시험비행을 했다.
수직·수평꼬리날개를 모두 없애서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구현했고, 엔진 3개를 탑재해 초음속 장거리 순항과 레이저·고출력 센서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했다.
선양항공공업그룹(SAC)에서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J-50도 있다.
6세대 기술실증기로 전해지는 J-50은 수직꼬리날개가 없으나 추력편향 기동 능력을 통해 기동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2030년대 이후 중국 해군 항공모함 탑재기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영국·이탈리아와 공동으로 글로벌전투항공체계(GCAP)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GCAP는 프랑스·독일 주도의 미래전투항공체계(FCAS)가 양국 간 갈등으로 무산되면서 미국을 제외한 서방 세계에선 유일한 6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BAE 시스템스(영국)·레오나르도(이탈리아)·미쓰비시중공업(일본)이 참여하는 GCAP는 2035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AI 기반 조종 시스템과 유·무인 복합체계 등을 갖출 예정이다.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군사적 대치 가능성을 의식하는 만큼 GCAP의 성능이 한층 강화될 수도 있다.
러시아도 5세대 전투기 SU-57이 배치되어 있고, F-35와 유사한 SU-75 전투기 개발도 진행중이다. 향후 6세대 전투기 개발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2030년대부터 한반도 주변 지역에 5·6세대 전투기들이 잇따라 실전배치되지만, 한국은 5세대인 F-35A와 4.5세대 기종인 KF-21 등이 일선에서 활동한다.
4.5세대와 5세대 기종이 핵심인 한국 공군 전력 구조로는 5·6세대 전투기를 앞세우는 주변국과의 공군력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
연구용역 입찰제안서에서 한국 공군 내부의 위기의식이 엿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선진국보다 늦어질 가능성
일각에선 차세대 전투기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6세대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 주변국들은 2030년대부터 6세대 전투기를 잇따라 선보이게 된다.
한국은 차세대 전투기 개념연구가 종료되고 공군의 요구성능 설정과 소요제기·소요확정, 중기소요 전환, 선행연구, 사업타당성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워도 2040년대 중·후반에야 6세대 전투기를 내놓을 수 있다.
고성능 엔진 개발을 비롯한 핵심 기술의 확보가 늦어지면, 차세대 전투기 확보 시점은 2050년대로 미뤄질 우려도 있다.
2040∼2050년대는 주변국 6세대 전투기가 충분한 운용 이력을 축적한 상태다. 기술적 검증이 이뤄지고,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확립됐을 시점이다.
특히 GCAP는 서방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3국 판매가 가능한 6세대 전투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여러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는 기종이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가 등장했을 때는 GCAP가 6세대 전투기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수출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KF-21 체계개발을 할 때,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대한 연구도 사전에 진행해서 전력화를 서두를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AI 발달에 따른 무인전투기의 비중 확대 등도 고려해야 할 변수다. 무인전투기는 조종사 생존 문제 등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쓰임새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KF-21의 성과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차세대 전투기 연구는 필수다.
그러나 주변국보다 뒤늦은 개발은 공군 전력 구조와 산업 발전 등에 미치는 영향을 떨어뜨린다. 지금이라도 관련 사업을 가속화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