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 아니어도 반값이면 산다”…정수기부터 청소기·스마트폰까지 번진 ‘리퍼브’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무조건 새 제품을 찾기보다 가격과 성능을 따져 소비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반품되거나 재입고된 제품을 점검·수리·세척한 뒤 다시 판매하는 ‘리퍼브(refurbished)’ 제품도 이런 흐름을 타고 소비자의 선택지로 들어오고 있다.

 

코웨이 제공

과거에는 중고 제품과 비슷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제조사가 직접 품질을 검증하고 보증까지 제공하는 방식이 확대되고 있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같은 렌털가전부터 청소기, 헤어기기, 스마트폰, 태블릿PC와 노트북까지 품목도 넓어졌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쿠쿠는 공식몰에서 리퍼브 정수기 6종을 렌털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100도씨 끓인물 정수기’의 할인 렌털료는 월 1만9900원이다. ‘스팀100 정수기’는 월 2만1900원, ‘ZERO 100S 끓인물 냉온정 얼음정수기’는 월 2만5900원, ‘제로100 슬림 얼음정수기’는 월 2만9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모두 ‘리퍼브·한정수량’ 상품이다.

 

리퍼브 제품이라고 해도 계약 구조는 일반 렌털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로100 슬림 얼음정수기의 경우 의무사용기간과 총 계약기간이 각각 60개월이다. 기본 렌털료는 월 5만8900원이지만 리퍼브 할인 렌털료는 월 2만99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쿠쿠는 올해 리퍼브 제품 판촉에도 힘을 싣고 있다. 지난 3월 ‘리퍼브 정수기 렌탈 페스티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고 4월과 5월에도 관련 라이브 판매를 이어갔다. 5월 방송에서는 리퍼브 정수기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권 등 별도 혜택도 내걸었다.

 

초기 구매비용이 큰 정수기를 리퍼브와 장기 렌털을 결합해 판매하면서 월 부담을 낮추고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렌털업계에서 리퍼브 제품 자체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코웨이는 2007년 렌털가전 업계 최초로 리퍼브 제도를 도입했다. 회사는 자원 재사용과 폐기물 감축을 위해 리퍼브 사업을 운영해왔으며 2030년까지 리퍼브 제품 2만대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코웨이 공식몰에는 별도의 ‘리퍼브 기획전’이 마련돼 있다. 스스로케어 비데와 싱글파워·노블·멀티액션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제품이 리퍼브 등급별로 판매되고 있다. 공식몰은 리퍼브 제품에 최대 30%의 스페셜 할인가를 제공하고 재고가 없을 경우 입고 알림을 신청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코웨이의 리퍼브 제품은 고객이 수년 동안 사용한 렌털 제품을 그대로 다시 판매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단순 변심 등으로 반환된 제품 가운데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해 부품 교체와 성능 테스트 등 재상품화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다.

 

장기간 렌털한 뒤 회수된 제품은 별도의 자원순환 체계에 투입된다. 제품에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분리하거나 폐플라스틱을 파·분쇄하고 펠릿 형태로 만들어 새로운 제품 원료로 활용하는 식이다.

 

리퍼브 시장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같은 렌털가전을 넘어 일반 생활가전으로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다이슨은 국내 공식몰에서 ‘셀렉티드 리퍼브 라운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할인폭은 제품에 따라 최대 51%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정상제품가 79만9000원인 ‘다이슨 펜슬백 플러피 콘’ 리퍼브 제품은 39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할인율은 50%다. ‘다이슨 V8 싸이클론’은 정상제품가 54만9000원에서 51% 낮은 26만9000원에 판매한다.

 

고가 헤어기기도 예외가 아니다. 정상제품가 69만9000원인 ‘에어랩 i.d. 멀티 스타일러 앤 드라이어’ 리퍼브 제품은 45만3000원으로 35% 저렴하다.

 

다이슨은 승인된 전문업체에서 제품을 점검·클리닝하고 성능 기준에 맞춰 테스트한 뒤 리퍼브 전용 박스에 포장해 출고한다. 초기 불량으로 반품된 제품의 경우 필요하면 정품 새 부품을 사용해 리퍼브 과정을 진행한다. 공식 리퍼브 제품에는 주문일로부터 1년간 무상 애프터서비스(A/S)도 제공한다.

 

가격을 크게 낮추면서도 제조사가 품질 검증과 사후 서비스를 직접 책임지는 구조인 셈이다.

 

리퍼브를 활용한 판매 방식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식 온라인몰에서 ‘갤럭시 인증중고폰(Samsung Certified Re-Newed)’을 판매하고 있다. 일반 중고폰을 매입해 되파는 방식이 아니라 반품된 갤럭시 제품을 대상으로 재생산 과정을 거쳐 다시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인증중고폰에 정품 부품과 삼성 정품 인증 배터리를 적용하고 품질 테스트를 거친다. 신제품과 같은 품질 기준과 보증도 적용한다. 외관에는 미세한 흠집이 남을 수 있지만 기능이나 성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공식몰에서는 갤럭시 Z 폴드와 Z 플립 등 플래그십 제품까지 인증중고폰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제조사가 직접 제품의 출처와 재생 과정을 관리하고 품질을 보증하면서 기존 중고거래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제품 상태를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보완한 것이다.

 

애플 역시 국내 공식 온라인스토어에 ‘Apple 인증 리퍼비쉬’ 전용 판매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팟, 애플TV, 액세서리 등이 판매 대상이다. 모든 인증 리퍼비쉬 제품은 기능 테스트를 포함한 검수 과정을 거치며 제품에 따라 최대 15% 할인된다. 기본적으로 1년 제한 보증도 제공한다.

 

특히 iOS 기기의 경우 새 배터리와 외장 쉘을 적용하고 필요한 경우 검수를 거친 애플 정품 부품으로 교체한다. 액세서리와 케이블, 운영체제도 함께 제공하고 새 포장 상자에 담아 판매한다.

 

리퍼브가 단순히 ‘한번 뜯었던 제품을 싸게 파는 것’에서 제조사가 직접 품질을 복원해 다시 시장에 내놓는 하나의 상품군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리퍼브 제품은 장점이 뚜렷하다. 단순 변심이나 초기 불량 등으로 돌아온 제품 가운데 정상적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폐기하지 않아도 된다. 회수 제품을 다시 판매해 자원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재고와 폐기 부담도 낮출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제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조사의 검수와 보증을 받은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제품 가격이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가전과 IT기기일수록 할인 체감 효과가 크다.

 

실제 기업들도 리퍼브의 핵심 경쟁력을 단순한 ‘싼 가격’보다 품질 검증에 두고 있다. 다이슨은 공식 리퍼브 제품에 성능 테스트와 1년 보증을 적용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신제품과 동일한 품질 기준과 보증을 내세운다. 애플 역시 기능 테스트와 1년 제한 보증을 제공한다.

 

정수기와 비데처럼 위생에 민감한 제품에서는 검증 절차가 더욱 중요하다. 가격만 낮춰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고 어떤 제품을 리퍼브 대상으로 삼는지, 어떤 부품을 교체하는지, 세척과 성능 검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시장 확대의 전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속에서 무조건 새 제품을 선호하기보다 가격과 실제 사용가치를 따지는 소비자가 늘면서 리퍼브에 대한 거부감도 낮아지고 있다”며 “제조사가 직접 품질을 검증하고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체계가 확산되면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지를, 기업에는 자원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