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독점을 통해 역대 최대 역할이 부여된 경찰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300건에 육박하는 실종 신고를 헌신짝처럼 버려둔 제주 경찰부터, 자식의 참혹한 범죄 혐의를 덮으려 경찰 조직이 통째로 덤벼든 광주 경찰의 비극까지 한두건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한 지역에 십수년간 뿌리내린 이른바 ‘향찰(鄕察)’ 카르텔이 자정 기능을 마비시킨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모 경장의 비위는 지방 치안 현장의 감시망이 얼마나 무력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5월 15일 장모(37)씨와 지난달 2일 60대 남성의 실종 신고를 각각 접수한 뒤 “연락이 닿았고, 가족이나 지인과 통화를 원치 않는다”며 둘 다 종결 처리했다. 이후 2명과 통화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장 씨의 경우 전산 시스템에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허위 사유를 입력한 것까지 확인됐다. 그는 이후 시스템 관리 목록에서 장 씨 관련 내용을 아예 삭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파출소 직원이 신고자를 면담한 기록도 함께 사라졌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멋대로 뭉갠 사건만 무려 298건에 달한다. 여경 화장실 무단 침입까지 저지른 그의 행태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견제 시스템이 마비된 조직이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지역 경찰의 폐쇄성이 부른 비극은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이른바 ‘장윤기 사건’에서 극에 달했다. 피의자 장씨가 범죄를 저지른 직후, 현직 경찰 간부인 그의 부친과 동료 경찰들은 수사망을 교란하고 범행 차량 내 핵심 증거를 파기·은폐했다. 수사 지휘부마저 혐의를 축소 적용하려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공공의 안녕을 지키려 세운 사법 기관이 도리어 토착 인맥과 제 식구를 감싸는 ‘용병’으로 변질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리 발생의 원인 중 하나로 동일한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로 인해 토착 권력화된 ‘향찰’ 구조를 지적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동일 관서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는 1만7000여명에 달하며, 수사 실무를 총괄하는 경감·경위급에 5명 중 1명꼴로 집중돼 있다. 순환 보직으로 잠시 거쳐 가는 경찰서장이나 부장보다 지역 사정에 훤한 향찰들이 내부 실권을 쥐면서, 외부 감찰과 자정 노력은 연줄의 벽에 막혀 번번이 무력화됐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자 정부는 연고지 근무를 제한하고 친인척 및 토착 인맥과의 유착을 차단하는 ‘상피제(相避制)’와 강도 높은 ‘순환보직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기근속으로 형성된 토착 카르텔을 원천 봉쇄하고, 연고지 수사에서 발생하는 ‘제 식구 감싸기’를 제도적으로 끊어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십수년간 축적된 지방 치안 현장의 토착 유착 고리가 인사이동이나 회피 제도만으로 잘라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사건 터지면 4일 만에 국정감사 서류 만들어서 발표하는 게 무슨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겠냐”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6개월이든 1년이든 위원회를 꾸려서 현장에 직접 가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경찰관이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평가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10여 년 전 테리사 메이 총리가 받았던 연봉이 15만(약 2억8029만원)파운드 정도였는데, 런던 수도 경찰청장은 2배인 28만파운드를 받았다. 이처럼 합당한 처우를 해주되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