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가 콜라 되고, 고추장이 샌드위치로”…유통가에 꽂힌 ‘K식재료’

차로 마시던 검정보리가 콜라가 되고, 밥상 위 고추장은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갔다. 흑임자와 팥은 커피전문점의 차가운 음료와 디저트로 변신했다.

 

상미당홀딩스 제공

유통업계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식재료와 먹거리를 현대적인 메뉴에 결합하는 실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의 맛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콜라와 프라페, 샌드위치, 쿠키처럼 소비자에게 익숙한 형식에 검정보리·흑임자·팥·고추장 등을 넣는 방식이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맛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색다른 조합으로 신제품의 화제성을 높일 수 있다.

 

K푸드에 대한 해외 관심이 커지면서 외국인에게 한국 식문화를 보다 쉽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도 식품·외식업체들이 관련 제품을 확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음료는 지난 7월 국내산 검정보리를 콜라와 결합한 제로 탄산음료 ‘블랙보리 콜라’를 출시했다. 국내산 검정보리 농축액과 보리 농축액을 넣어 콜라의 탄산감 뒤에 구수한 보리 풍미가 이어지도록 만든 제품이다. 설탕과 칼로리, 카페인을 모두 뺀 것도 특징이다.

 

눈에 띄는 점은 검정보리의 소비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음료의 ‘블랙보리’는 그동안 국내산 검정보리를 앞세운 차음료 브랜드로 자리 잡아왔다. 회사는 이번 제품을 통해 차와 곡물음료 영역에 머물던 검정보리를 대중적인 탄산음료 시장으로 확장했다.

 

전통 곡물을 ‘건강한 차’라는 익숙한 틀에서 꺼내 젊은 소비층이 자주 찾는 제로 탄산음료에 접목한 셈이다.

 

커피전문점에서는 흑임자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할리스는 25일 흑임자와 쌀, 홍시, 곶감, 모과 등 한국적인 식재료를 활용한 가을 시즌 ‘K-MOOD’ 메뉴를 선보였다. 현재 할리스 공식 홈페이지에는 ‘흑임자 버터크림 라떼’, ‘흑임자 초코 롤케이크’, ‘모과배차’ 등이 신제품으로 소개돼 있다.

 

대표 메뉴 ‘흑임자 라이스 할리치노’는 고소한 흑임자에 버터크림과 쌀 토핑을 조합했다. 전통 식재료인 흑임자를 젊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프라페형 음료로 바꾼 것이다. 흑임자를 라떼와 롤케이크까지 확대 적용하면서 한 가지 식재료를 음료와 디저트 전반으로 확장한 것도 특징이다.

 

홍시와 곶감, 모과처럼 과거 차나 전통 디저트에서 주로 접하던 재료도 스무디와 카페 음료로 옮겨왔다. ‘전통음식’이라는 형식보다 맛과 향만 가져와 현재의 소비 방식에 맞춘 것이다.

 

상미당홀딩스의 파리바게뜨는 밥상 위 한식을 아예 샌드위치로 옮겼다.

 

지난달 출시한 ‘K파바 고추장 불고기 샌드위치’는 토종효모 반죽으로 만든 빵에 고추장 불고기와 깻잎 마요 소스, 채소와 무채 피클을 넣었다. 불고기를 깻잎과 채소에 싸 먹는 한식의 ‘쌈’ 조합을 빵 사이에 구현한 메뉴다.

 

이 제품은 파리바게뜨가 한국적인 식재료와 문화를 베이커리로 재해석하는 ‘K파바’ 프로젝트의 첫 샌드위치 제품이다. 앞서 제주 청보리와 팥앙금, 쑥떡을 활용한 ‘제주 청보리빵’과 비빔밥 색감을 케이크로 옮긴 ‘비빔 케이크’ 등도 선보였다.

 

고추장을 단순히 ‘한국 소스’로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불고기·깻잎·무채까지 하나의 메뉴로 묶은 것이 특징이다. 한식의 재료뿐 아니라 먹는 방식까지 베이커리 상품으로 전환한 사례다.

 

한국 식재료를 활용하는 움직임은 국내 브랜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은 지난 5월 대표 음료 ‘오리지널 아이스캡’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논 오리지널 아이스캡’ 캠페인을 선보였다. 팥과 흑임자 등 한국 소비자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활용해 빙수를 연상시키는 아이스캡 5종을 구성하고, 전통 재료를 활용한 도넛도 함께 내놨다.

 

1999년부터 판매해온 글로벌 대표 상품에 현지 식문화를 입힌 ‘로컬라이징’ 전략이다. 해외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단순히 글로벌 메뉴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식재료를 제품 개발의 핵심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팥빙수나 흑임자처럼 외국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맛을 익숙한 아이스 음료 형식에 담으면 한국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전통 식재료뿐 아니라 한국인이 익숙하게 먹어온 지역 간식도 기존 과자와 결합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6월 호두과자 브랜드 ‘복호두’와 협업해 시즌 한정 제품 ‘마가렛트 호두과자맛’을 출시했다. 마가렛트 특유의 부드러운 쿠키 식감에 팥앙금의 단맛과 호두의 고소한 풍미를 넣어 호두과자 맛을 구현했다.

 

롯데웰푸드가 전국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와 대표 메뉴를 마가렛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협업 대상으로 호두과자를 택했다. 실제 롯데웰푸드 공식몰에서도 현재 ‘마가렛트 호두과자맛’이 판매되고 있다.

 

길거리나 휴게소 등에서 접하던 호두과자를 포장 비스킷으로 바꾸면서 소비 장소와 방식을 넓힌 사례다.

 

최근 제품들의 공통점은 전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소비자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먹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검정보리는 차 대신 콜라가 되고, 흑임자는 할리치노와 라떼가 됐다. 고추장은 샌드위치 소스로, 팥과 호두과자는 아이스 음료와 쿠키로 옮겨갔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이다. 전혀 생소한 원료를 사용한 신제품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지만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다. 반대로 이미 알고 있는 맛만 반복하면 차별화가 어렵다.

 

검정보리·흑임자·팥·고추장처럼 소비자에게 익숙한 재료를 예상하지 못한 제품군에 넣으면 두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 친숙한 맛이 구매의 문턱을 낮추고, ‘보리 콜라’나 ‘고추장 샌드위치’ 같은 의외성이 관심을 끄는 구조다.

 

여기에 K푸드의 인지도까지 높아지면서 활용 범위는 더 넓어지고 있다. 과거 김치·불고기·비빔밥처럼 완성된 한식 메뉴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흑임자·보리·고추장·깻잎처럼 개별 식재료와 맛의 조합을 음료·베이커리·스낵으로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 식재료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제품 형태와 결합하면 젊은 세대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만들 수 있고 해외에서는 K푸드를 보다 친숙하게 경험하게 하는 소재가 될 수 있어 관련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