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있는 해석과 상상력, 뚜렷한 개성에 압도적인 기교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클래식계 샛별 마리아 두에냐스가 한국에 온다. 2002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다. 나이 스물셋에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이 앞다퉈 찾는 연주자로 올라섰지만 “테크닉은 목적지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다음달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13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구스타보 히메노가 지휘하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는 두에냐스는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테크닉은 연주자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에 꼭 필요하나 그 자체가 목적지는 아니다”며 “나에게 연습의 목적은 테크닉을 완전히 몸에 익혀 무대에서는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두에냐스의 이름이 클래식 무대에 각인된 것은 2021년이다. 열여덟 살에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시니어 부문 1위와 청중상을 함께 받았다. 이듬해 도이체 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을 맺은 뒤 빈 심포니, LA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정상급 악단과 잇달아 무대에 올랐다. 크리스티안 틸레만, 구스타보 두다멜, 야니크 네제 세갱, 안토니오 파파노 등 거물 지휘자들과도 호흡을 맞췄다.
그는 “메뉴인 콩쿠르 우승 이후 제 삶에는 여러 현실적인 변화가 생겼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저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새로운 기회도 많이 생겼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나만의 개성과 모든 작품 안에서 진실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에 더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가 저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계속 탐구해가고 싶어요.”
젊은 연주자가 찾는 ‘자기 목소리’는 결국 바이올린의 음색이다. 두에냐스는 하나의 매끈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것보다 바이올린에서 여러 표정을 끌어내는 데 관심이 있다고 했다.
“다채로운 음색과 뉘앙스에 특히 끌립니다. 바이올린이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거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 섬세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거칠 수도 있다’는 설명대로 그의 연주는 강한 개성과 대담한 프레이징, 폭넓은 음색이 특징이다. 뉴욕타임스는 익숙한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미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젊은 연주자로 평가했다. 2025년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음반으로는 그라모폰 어워즈 기악 부문상을 받았고 ‘올해의 젊은 예술가’에도 선정됐다. 압도적인 기교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후 점차 해석의 깊이를 더해가는 성장형 연주자인 셈이다.
두에냐스는 작곡도 한다. 자신의 주요 협주곡 카덴차를 직접 쓰는데 한국 무대에서 연주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도 마찬가지다. “브람스 협주곡에서도 모차르트, 베토벤 협주곡처럼 제 카덴차를 직접 썼습니다. 저에게 카덴차를 쓰는 것은 협주곡과 완전히 별개의 부분을 끼워 넣는 일이 아닙니다. 카덴차 역시 작품 자체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카덴차를 연주자가 가장 자유로워지는 순간으로 설명했다.
“카덴차는 아주 특별한 순간입니다. 갑자기 관객과 어떤 의미에서는 작곡가와 단둘이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에는 진정한 자유가 있고 저는 언제나 그 공간을 저만의 것으로 만들어갈 기회를 즐깁니다.”
두에냐스는 카덴차뿐 아니라 무반주 바이올린곡 ‘오마주 1770’, 피아노 독주곡 ‘페어웰’ 등을 쓴다. 직접 음악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전 작품을 읽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직접 무언가를 써보면 아주 작은 선택 하나하나를 훨씬 예리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작곡가들이 작품 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됐어요. 이제는 악보를 펼쳤을 때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두에냐스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운지법도 모은다. 이번에 연주할 브람스 협주곡만 해도 여섯 명분을 갖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러시아판 악보에 실린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의 것도 그중 하나다. 영상이나 음원만 듣고 거장의 운지법을 스스로 알아낸 경우도 있다.
그의 악보는 인쇄된 음표가 파묻힐 만큼 연필과 색색의 펜으로 덮여 있다. 하루에 한 가지 색을 쓴 흔적이다. 운지를 적어놓고 이튿날 바꾸고, 자기 리허설과 실연 녹음을 들으며 또 고친다. 다섯 달을 돌아 처음 생각으로 되돌아오는 일도 있다. 가능한 선택지를 모두 거쳤다는 확신이 설 때에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편한 길도 택하지 않는다. 넓은 음역을 오가는 악구를 굳이 G선 하나로 처리하고, 반복되는 동기의 운지를 매번 다르게 잡는다. 불필요해 보이는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음색 차이가 “편의나 편안함보다 훨씬 흥미롭다”는 이유에서다.
바이올린은 어린 두에냐스에게 애초부터 직업이라기보다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처음부터 바이올리니스트가 돼야겠다는 뚜렷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무척 수줍음이 많은 아이여서 바이올린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됐습니다.”
그가 거장들의 연주에서 매료됐던 것도 완벽한 기교보다 해석의 차이였다.
“두 연주자가 똑같은 음을 연주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 점은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번에 연주하는 브람스 협주곡에서도 두에냐스가 주목하는 것은 ‘완성된 걸작’보다 그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브람스는 처음 이 곡을 4악장으로 구상했다가 스케르초 악장을 버렸고 요아힘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품을 다듬었다.
“브람스 협주곡에서 제가 특히 매력을 느끼는 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작품이 사실 아주 긴 변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걸작이라도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변화시키고 때로는 무언가를 내려놓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그런 탐구의 과정을 살아 있게 하려고 한다”며 “관객도 이 협주곡을 이미 완성된, 변하지 않는 하나의 걸작으로 듣기보다 지금도 저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음악으로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휘봉은 같은 스페인 출신인 구스타보 히메노가 잡는다. 두 사람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처음 함께했다. 히메노는 2015년부터 10년 동안 룩셈부르크 필하모닉을 이끌었다.
두에냐스는 히메노를 “매우 뚜렷한 음악적 개성과 명확한 생각을 지닌 지휘자”라고 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무척 세심하게 살피는 동시에 연주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음악에 담을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며 “브람스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 함께 써 내려 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두에냐스의 바이올린은 잠바티스타 과다니니와 스트라디바리우스 ‘미켈란젤로’. 어느 바이올린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공연 직전 결정된다. 둘의 차이에 대해 두에냐스는 “완전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며 “과다니니는 보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악기인 반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놀라울 만큼 깊고 다채로운 음색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악기도 때로는 ‘기분’이 달라지고 날씨에도 매우 민감해서 공연 며칠 전 어떤 악기로 연주할 지 결정한다.
지난 28일에는 두에냐스의 세 번째 DG 음반 ‘오마주 투 하이페츠’도 공개됐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와 함께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과 랄로 ‘스페인 교향곡’, 드뷔시와 폰세 등의 작품을 담았다. 모두 20세기 바이올린의 전설 야샤 하이페츠와 깊은 인연을 맺은 레퍼토리다.
“하이페츠는 제 음악 인생에서 항상 함께해온 존재입니다. 제가 그에게서 특히 매료되는 지점은 압도적인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을 바라보는 사고의 명료함입니다.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음반 일부에선 하이페츠가 실제 연주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그의 편곡 작품 일부를 녹음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녹음 전에는 그 악기로 일부러 너무 많이 연습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그 바이올린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악기가 지닌 역사와 고유한 정체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악기가 스스로 말하도록 두고 싶었습니다.”
하이페츠에 대한 헌정은 두에냐스 자신의 작곡 활동과 연결된다. 그는 이번 음반에 소품과 편곡을 함께 실은 이유를 과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단순히 작품을 해석하는 연주자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편곡하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이기도 했던 전통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젊은 연주자가 첫 한국 방문에서 기대하는 것은 소박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저 천천히 걸어 다니며 현지인처럼 그곳을 알아가고 싶어요. 한국 음식도 맛보고 싶고 공연장 밖의 서울과 통영 모습도 직접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심리학 석사 과정이고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그는 “특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며 “언젠가는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과도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