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헌정사상 최초로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반려하며 ‘재제청’을 요청한 것을 두고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기존 추천 후보 3명(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김민기 수원고법 고법판사) 중에서 1명을 재제청하라고 요구한 점에 대해 “사실상 ‘김민기 제청’을 대법원장에게 압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넘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삼권분립 원칙을 형해화한 것이란 지적이다.
30일 법조계에선 조희대 대법원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재체청을 위한 대법관후보자 추천위원회를 다시 꾸리고 후보자 천거 절차부터 다시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 법원조직법 41조의2에 따르면 대법관후보추천위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구성되고, 추천위가 후보자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 추천위는 해산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대법원장에게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할 뿐 추천 결과에 구속되도록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는 기존에 추천된 후보 내에서 재제청하라는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어서 이 경우 여권과 또다시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앞서 28일 브리핑에서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면서 “추천위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 3인 후보에 대해 “이미 정당하게 추천된 후보자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반려한 상태에서 이제 남은 선택지는 김 고법판사뿐이다. 김 고법판사의 남편은 이 대통령이 지명한 첫 헌법재판관인 오영준 재판관이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상황에서 부부가 나란히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이해충돌 소지 등으로 적절치 않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기존 3인 내 재체정을 요구하며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이를 강제하는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청와대와 민주당의 이러한 요구는 위헌 소지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임명 거부하고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했을 때 추천위의 추천 절차를 다시 밟지 않고 제청받지 않은 나머지 후보 중에 재제청해야 한다고 법을 개정한다면 그 법은 위헌”이라며 “대통령은 제한 없이 거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두 번만 더 거부하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게 되는데, 헌법상 권한인 대법관 제청권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을 지낸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페이스북 글에서 “누구를 어떤 절차를 거쳐 제청할 것인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속하는 문제”라며 “대통령이 여기에 관여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임명권 행사를 넘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개입하는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 역시 임명을 거부할 권한이 있는 것은 맞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는 후보에 대한 제청을 받지 않고 대통령이 원하는 인사를 고집하니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는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의심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통령은 국민적 비판과 여론 악화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