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엄마, 여동생이 연락두절된 상태예요.”
수야시 반다리(29)는 30일(현지시간) 네팔행 항공기 안에서 기자를 만나 “지금은 동네가 물에 다 잠겨 집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이같이 말했다. 반다리 가족은 지난 26일 홍수로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한 네팔 중부 바그마티주 누와코트(Nuwakot)에서 평생 살았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뒤 취업 준비 중이던 반다리는 “이번 사고로 급히 네팔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항공기가 경유지에 내리자마자 네팔 지인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한 현지 사고 사진과 동영상을 굳은 표정으로 한참 확인했다. 반다리는 사고 관련 SNS 게시물을 계속 보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 혹시 가족 누가 나올까 싶어서”라고 했다.
반다리는 사고 당시 마을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떠내려간 것 같다고 전했다.
결혼한 딸을 보러 외국에 나가 있던 상황이라 변을 피한 부친은 급히 네팔로 돌아와 현재 수도 카트만두에서 지내고 있다. 반다리는 “아버지를 만나 가족을 찾을 방법을 논의하기로 했다”며 “다른 친구들도 이번 사고로 쓸려내려갔다”고 말했다.
네팔·중국 국경의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지 닷새째인 이날 양국에서 파악 중인 전체 사망자는 800명을 넘어섰고 실종자도 3000여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누와코트 트리슐리강 상류 지역에서 수력발전소를 짓던 한국인 9명도 아직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이들은 한국남동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파견된 근로자들이다. 빙하가 떨어져 내려 보테코시강이 범람하면서 인도 국경까지 흐르는 강에 인접한 거의 모든 지역 교량·도로 등 시설물이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반다리는 “통신이 안 돼 경찰, 구조대도 연락이 안 된다”며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다 막혀 집으로는 못 가고 일단 카트만두에서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반다리가 보여준 한 지인의 페이스북 영상에는 이웃집 가정이 3층에서 구조를 요청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2층까지 완전히 잠긴 물이 다 빠지지 않아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고 헬기만 진입할 수 있어 구조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다리 가족은 대대로 누와코트에 살았다. 실종된 어머니는 누와코트에서 지역 학교 선생님이었고, 할머니는 농사를 지었다. 반다리는 누와코트에 대해 “원래 비도 많이 안 오고 건조한 평야 지대”라며 “홍수는 골짜기에서 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홍수 위험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았는데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런 대홍수를 겪어 보지 못했다”며 “빙하가 녹는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중요한 문제라 여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20년 동안 살았다는 한국인 교민 A씨도 “네팔은 전체가 산악지대라 수도 카트만두에서 조금만 나가서 고속도로만 지나도 낭떠러지 아래로 차가 추락하거나 낙석 사고를 당하는 일이 흔하고 산 안쪽 마을에서 홍수가 나 몇 사람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자주 들린다”면서도 “워낙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일상이라 자연재해에 대한 경고에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사고 소식을 듣고 네팔 현지에서 지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급히 항공기에 오른 상황이었다. A씨는 “최근 1년 동안 기후가 급격히 변화한 것도 영향이 있다”며 “설산이 호수에 비치는 모습으로 유명한 ‘마차푸차레(물고기꼬리산)’에 올해 초 방문해 빙하가 많이 녹은 것을 봤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구조 작업과 실종자 수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카트만두 내 대형 병원에는 실종자를 찾는 대자보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트리부반 교육대병원을 찾은 라집 구릉(24)은 “운전기사로 일하던 형에 대한 실종신고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구릉은 “중국에서 네팔로 물건을 운송하는 물류 기사였던 형이 사고를 당했다”며 “사고가 발생하기 딱 1시간 전인 오전 8시30분쯤 형과 통화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형이 홍수에 대해 어떤 징조나 소음이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며 “단 1시간 만에 이런 소식을 들어 너무 충격이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구릉 역시 인근 지역에서 그간 홍수 피해가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동일한 지역에서 비가 조금 와서 중국과 네팔을 잇는 다리가 끊어지는 정도였다”며 “도로가 다시 연결돼 형이 운송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정도 된 것 같다”고 했다. 구릉은 형에 대해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알려주고 동생들에게 나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잘 챙겨주는 형이었다”며 “빨리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네팔 정부는 민간인 드론 사용자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실정이다. 현지 교민 동모씨는 “지반에 충격을 줄 정도의 댐 붕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언제 어디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민간인 드론 소유자에게 자원을 받아 수색에 도움을 요청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네팔에서는 기상 악화에 대한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현지시간) 트리슐리강 인근에서 2차 홍수가 발생했지만 1차 홍수보다 규모가 작아 현재까지 추가 피해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네팔행 비행기를 탔던 반다리 역시 기상 악화로 인해 네팔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항공사는 두 차례 착륙을 시도했으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인접국인 방글라데시에 기술착륙(승객 운송 없이 연료 보급이나 정비 등 기술적 목적을 위한 착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