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자신들이 지은 아파트를 다시 맡아 최신 ‘래미안’으로 바꾼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서울 마포구 한강삼성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했다. 삼성물산이 과거 직접 준공한 ‘삼성아파트’를 리모델링해 래미안으로 재탄생시키는 첫 사례다. 단순히 오래된 아파트를 고치는 것을 넘어 과거의 주택 브랜드를 현재의 대표 브랜드로 갈아입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마포한강삼성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은 지난 29일 총회를 열고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서울 마포구 토정로32길 일대에 위치한 한강삼성아파트는 삼성물산이 1997년 준공한 단지다. 현재 지하 2층~지상 28층, 3개동 456가구 규모로, 리모델링을 거치면 지하 6층~지상 29층, 3개동 482가구로 바뀐다. 신축 별동과 부대복리시설도 들어선다. 공사비는 약 2810억원이다.
삼성물산이 제안한 새 단지명은 ‘래미안 라시에르 한강(RAEMIAN LASIER HANGANG)’이다.
이번 사업의 상징성은 이름에 있다. 삼성물산은 1990년대 직접 지은 한강삼성아파트를 약 30년 만에 다시 맡게 됐다. 기존 삼성아파트를 자사가 직접 리모델링해 래미안 브랜드를 적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강과 맞닿은 입지도 적극 활용한다. 신축동 2개 층에 스카이라운지를 배치하고 옥상조경가든을 별도로 조성한다. 한강을 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광폭 거실 등 평면도 특화한다. 피트니스센터와 골프라운지, 힐링 커뮤니티, 웰컴라운지 등 커뮤니티 시설은 총 1762평 규모로 계획했다. 가구당 약 3.7평에 해당한다.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브랜드 가치’를 다시 입히려는 전략인 셈이다. 구축 아파트가 재건축을 기다리는 대신 기존 골조를 활용하면서 외관과 내부, 커뮤니티, 스마트홈 등을 최신 신축 아파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장을 건설사들이 새로운 먹거리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시선은 마포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 반포푸르지오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 준공된 237가구 규모 반포푸르지오는 지난 3월 삼성물산을 리모델링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기존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브랜드 단지가 삼성물산의 사업을 통해 새로운 래미안으로 바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삼성물산이 이곳에 적용하려는 방식은 ‘넥스트 리모델링’이다.
건물 지하·지상 구조체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세대와 공용부 내·외부 마감, 설비 등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스마트홈과 커뮤니티, 주차 시스템 등을 최신화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사업 완료 이후 준공일도 새롭게 바뀌는 ‘신축 래미안’ 수준의 단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이 사업을 내놓으면서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2000년대 초·중반 준공된 아파트 12개 단지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재건축 연한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최신 신축과 비교하면 상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애매하게 오래된 아파트’가 주요 공략 대상이다.
철거 후 다시 짓는 재건축과도 차이가 있다. 기존 구조를 활용하기 때문에 인허가 절차와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삼성물산은 공사를 2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쟁사도 같은 시장을 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더 뉴 하우스(THE NEW HOUSE)’라는 공동주택 주거개선 사업을 내놓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2단지를 첫 적용 사업지로 제시했다.
눈에 띄는 점은 입주민이 대규모 이주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단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THE NEW HOUSE’의 ‘NEW’에는 이주 없이(No move), 간소한 절차(Easy process), 2년 이내(Within two years) 사업 완료라는 의미를 담았다. 기존 재건축·리모델링과 달리 주민 부담과 사업 기간을 낮춰 상대적으로 젊은 구축 단지까지 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이 시장에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아파트의 ‘물리적 수명’과 ‘상품 수명’ 사이의 차이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는 당장 철거하고 다시 지을 만큼 구조가 낡지는 않았지만 최근 신축과 비교하면 주차장, 커뮤니티, 외관, 스마트홈, 조경 등 상품 경쟁력에서는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는 재건축 시장 밖에서도 새로운 정비사업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조합과 주민 입장에서도 사업성이 낮아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단지라면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브랜드 아파트 선호도가 높은 서울에서는 변화의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오래된 아파트가 새 브랜드를 달 경우 외관과 커뮤니티 개선뿐 아니라 단지 이미지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마포한강삼성이 상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7년 삼성물산이 지은 ‘삼성아파트’가 약 3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삼성물산 손에 맡겨졌다. 이번에는 이름부터 다르다. ‘삼성아파트’였던 단지의 다음 이름은 ‘래미안 라시에르 한강’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연한을 채우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2000년대 준공 단지들은 상품 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반면 전면 재건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기존 구조를 활용해 외관과 커뮤니티, 설비를 최신화하는 사업이 새로운 정비시장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서울 핵심지에서는 신축 브랜드 선호도가 집값과 단지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기존 단지가 어떤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느냐도 조합원들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