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외식 프랜차이즈들이 해외 영토 확장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 ‘1호점’을 내는 데 의미를 뒀다면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흥 시장에는 새로 깃발을 꽂고, 성장성이 확인된 북미에서는 수백 개 매장을 기반으로 생산·물류시설까지 갖추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선두에서 보폭을 넓히는 곳은 파리바게뜨다. 허영인 회장이 글로벌 사업 확대에 꾸준히 공을 들여온 가운데 최근 라오스에 처음 진출하며 동남아시아 사업 국가를 7개국으로 늘렸다. 동시에 북미에서는 미국 300호점을 넘어서는 등 양쪽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뚜레쥬르와 BBQ 등 경쟁 브랜드도 북미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매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성장 한계를 넘어 해외에서 새로운 매출원을 확보하려는 K푸드 기업들의 경쟁이 ‘출점’에서 ‘현지 공급망 구축’으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파리바게뜨는 지난 7월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핵심 상권인 ‘콕콕 메가몰 빠뚜사이’에 현지 첫 매장을 열었다. 국내 제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라오스 시장에 진출했다.
파리바게뜨는 2024년 라오스 대표 기업인 코라오그룹과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고 현지 진출을 준비해왔다.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이어 라오스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면서 동남아시아 매장 운영 국가는 7개국이 됐다.
라오스 1호점에서는 ‘프레시 요거트 크림 케이크’, ‘베스트 에버 갈릭 브레드’, ‘크런치 초코 번’ 등 기존 인기 제품과 함께 현지 입맛을 겨냥한 ‘무상킹 두리안 롤케이크’ 등을 판매한다.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 취향을 반영하는 전략이다.
생산 기반도 함께 넓히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말레이시아 조호르에 연면적 1만2900㎡ 규모의 할랄 인증 생산센터를 준공했다. 연간 최대 1억개의 베이커리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로, 동남아시아에 이어 장기적으로 중동·북아프리카까지 공급할 수 있는 거점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매장의 할랄 인증도 확대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향후 중동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리바게뜨가 가장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곳은 북미다.
2005년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파리바게뜨는 현재 미국 30개 주까지 사업 지역을 넓혔다. 지난 5월에는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미국 첫 공항 매장을 열면서 미국 내 300호점을 돌파했다.
현지 브랜드 평가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매체 앙트러프러너가 발표한 ‘2026 프랜차이즈 500’에서 파리바게뜨는 종합 29위, 베이커리카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61위에서 2025년 42위, 올해 29위까지 올라섰다. 국내 브랜드 가운데 올해 종합 톱30에 포함된 브랜드도 파리바게뜨가 유일하다. 지난해 북미에서는 77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매장이 늘자 현지 생산시설 투자도 뒤따르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제빵공장을 짓고 있다. 완공 이후 북미 매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핵심 생산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파리바게뜨는 현재 동남아시아 7개국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영국, 중국, 몽골 등 세계 13개국에서 730여개 글로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만 뛰는 것은 아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도 해외 약 560개 매장을 운영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몽골, 캐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특히 미국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달 중순 기준 미국 매장은 205개까지 늘어났다. 미국 법인 매출도 최근 4년 사이 약 3.8배 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바게뜨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매장을 늘리는 단계를 넘어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는 데 투자하고 있다.
뚜레쥬르는 지난해 말 미국 조지아 생산공장을 가동했다. 미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면서 물류 효율을 높이고, 향후 미국 전역으로 가맹점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CJ푸드빌은 이미 2024년 뚜레쥬르 글로벌 매장 500호점을 넘어섰다. 2004년 미국에 진출한 뒤 2023년 미국 100호점을 돌파했는데, 불과 3년 만에 현지 점포가 200개를 넘어설 정도로 출점 속도가 빨라졌다.
결국 국내 베이커리 맞수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경쟁 무대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셈이다. 양사 모두 수백 개의 미국 매장에 이어 현지 생산공장까지 구축하면서 장기전 채비에 들어갔다는 점도 닮았다.
K치킨도 해외 확장의 또 다른 축이다.
제너시스BBQ그룹은 현재 57개국에서 약 800개의 해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만 30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33개 주까지 진출 지역을 확대했다.
실적도 뒤따르고 있다. BBQ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소비자 매출은 4500억원으로 전년보다 12.5% 증가했다. 이 가운데 미국 소비자 매출은 3400억원으로 13.3% 늘었다. 지난해에는 유타·오리건·사우스캐롤라이나 등 3개 주에 새로 진출했으며 온두라스 등 중남미로도 사업 지역을 넓혔다.
미국에서 확보한 브랜드 인지도를 주변 국가로 확산시키는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북미에 이어 중남미 현지 사업자들의 매장 개설 문의가 이어지는 등 미국 시장이 다른 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교촌치킨 역시 해외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교촌은 올해 3월 기준 미국·중국·말레이시아 등을 중심으로 해외 7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시장에서는 직영 사업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UAE·대만·중국·캐나다 등에서는 현지 파트너와 손잡는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 외식업체들의 최근 해외 전략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깃발 꽂기식 진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동남아 주요 도시에 1호점을 여는 것 자체가 글로벌 진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일정 규모 이상의 매장을 먼저 확보하고 현지 생산시설과 물류망을 구축해 원가와 공급 안정성을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
파리바게뜨가 말레이시아와 미국에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뚜레쥬르 역시 조지아 현지 공장을 가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면 물류 거리와 공급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지역별 소비자 취향에 맞춘 제품 개발에도 유리하다.
사업 방식도 지역별로 달라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는 현지 유통·상권에 밝은 기업과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는 반면, 이미 규모를 확보한 미국에서는 직접 생산·물류 인프라를 갖춰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식이다.
국내 식품·외식 시장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해외 사업의 중요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류가 만들어 놓은 K푸드 인지도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과거 해외 진출 때와 달라진 환경이다.
결국 앞으로의 승부는 ‘몇 개국에 진출했느냐’보다 현지에서 얼마나 지속적으로 매장을 늘리고 수익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라오스에 새 시장을 연 파리바게뜨부터 미국 200개점을 넘어선 뚜레쥬르, 57개국으로 확장한 BBQ까지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이 매장 수를 넘어 생산·물류 인프라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