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반려견을 키웠다는 이모(32)씨는 31일 “진료비 바가지를 쓸 뻔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생각에 반려견 온라인 카페를 뒤져 저렴한 동물병원을 찾았고 결국 반값 이하인 15만원에 스케일링을 받았다. 이씨는 “동물 진료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고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모르니 병원에서 멋대로 가격을 정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려동물 양육인구 1500만명 시대를 맞아 동물병원 ‘깜깜이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23년부터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이달 6일 개별 동물병원의 주요 진료항목 20개의 진료비를 온라인으로 전면 공개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반려인들은 여러 병원의 진료비를 온라인상에서 비교하는 게 가능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절차가 있어 유동적일 수 있으나 정부는 늦어도 연내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 전 가격 안내조차 받지 못하는 불투명한 구조 탓에 과잉진료나 오진 피해를 당하고도 무방비로 비용 폭탄을 맞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길고양이를 반려묘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냥줍’을 한 유모(31)씨는 첫 방문에서 검진과 약 처방으로 20만원을 내고, 일주일 뒤 입맛을 잃은 고양이의 추가 검진에 30만원을 더 썼다. 하지만 사람에게 옮는 피부병(링웜)조차 병원에서 알아채지 못해 한 달 뒤 인터넷 검색으로 직접 병명을 알았고, 하루 40만원짜리 입원만 지속적으로 권유받았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겨 16만원을 추가로 지출한 뒤 안약과 약 처방을 받고서야 증상이 호전됐다. 유씨는 “50만원을 넘게 쓰고도 정작 필요한 안약 처방조차 못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개별 병원의 진료비 공시가 동물의료 체계 선순환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조경 부산보건대 동물복지학과장은 “동물병원의 입지나 장비, 수의사 역량에 따른 가격 차등은 시장 논리상 당연할 수 있지만, 반려동물 보건의료는 민생과 직결된 ‘공적 영역’”이라며 “진료비 공개는 양육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했다.
반면 동물병원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람 의료와 달리 동물 의료의 경우 10%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는 등 공적지원이 전무해, 부가세 면제나 표준수가 체계 구축 등 근본적 지원 없이 개별 병원의 가격 공개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물의 체중, 품종, 연령에 따라 치료 방식이 다른 상황에서 단순 단가 공개가 저가 경쟁을 유발해 의료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장은 “동물 의료에 더 높은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면, (정부와 국회도) 그에 상응하는 공적 책임을 함께 다해야 한다”며 “이번 법안 대응을 기점으로 수의계의 뜻을 하나로 모아, 동물 의료 전반에 걸친 일방적인 규제와 부담을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다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