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뜬 이동식 슈퍼 ‘행복마차’… “자식만큼 반갑죠” [밀착취재]

경기도, 연천군서 정식 운행
장보기 불편 해소 ‘인기 만점’

31일 오전 경기 연천군 군남면 옥계1리 마을회관. 이업순(88) 할머니는 오전 9시30분부터 마을회관에 앉아 ‘행복배달 소통마차’(행복마차)를 기다렸다. 이날 빗길 탓에 약속한 시간보다 5분 늦은 10시5분, 노란색 1t 트럭이 마을회관 앞에 멈춰 서자 할머니 얼굴이 밝아졌다. 이 할머니가 챙겨야 할 장바구니는 자신의 것만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인 ‘은영엄마’와 ‘수지네 할머니’가 부탁한 계란도 두 판씩 대신 샀다.

이 할머니는 “마을에 작은 슈퍼조차 없어서 버스 타고 한 번 장 보러 나가려면 2∼3시간은 걸리고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걸어오는 일도 만만치 않다”며 “행복마차가 자식만큼 반갑다”고 활짝 웃었다. 주민 김영애(80)씨는 미리 주문해 놓은 튀김가루와 당근을 찾으며, 연천군 농어촌기본소득 월 15만원이 들어오는, 이른바 ‘노랑카드’를 꺼내 1만9800원을 결제했다.

31일 경기 연천군 증면 삼곶리 마을회관에 행복마차가 나타나자 우산을 쓴 주민들이 미리 주문해 놓았던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작은 트럭 안은 웬만한 동네 슈퍼 못지않았다. 종류별 라면은 물론이고 부침가루·밀가루·설탕·맛소금부터 락스와 샴푸, 과자, 두유, 국수까지 빼곡했다. 냉동고에는 임연수와 노르웨이산 고등어, 냉동 삼겹살과 찌개용 앞다리살, 냉동피자도 있다.



삼곶리에서 만난 신현창(78)씨는 주문해 놓은 열무 두 단과 쌀 10㎏ 한 포대, 계란 한 판, 둥지냉면, 초코파이까지 잔뜩 샀다. 신씨는 “운전면허를 반납한 데다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으니, 행복마차 없었으면 열무김치를 못 해먹었다”고 말했다. 행복마차는 삼곶리 이후 7개 마을을 더 가야 하지만 계란은 이미 동났다.

행복마차는 경기도가 올해 처음 인구 감소지역이자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지역인 연천군에 도입한 사업이다. 7∼8월 6개면 34개 마을에서 시범운영을 거쳐 이날부터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주민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시범운영 기간 행복마차의 매출은 1794만원에 달했다. 사업을 운영하는 김성찬 해피트리 팀장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주문 전화가 많이 온다”며 “아직 인건비도 나오지 않지만 행복마차를 기다리는 어르신이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로 동네 슈퍼가 사라지고 고령 주민들이 운전대를 놓으면서 접경지역 농촌에서 ‘장보기’는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행복마차는 단순한 이동식 슈퍼를 넘어 사라지는 농촌의 생활 인프라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열무와 쌀을 챙긴 삼곶리 신씨는 행복마차가 떠나기 전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추석 때도 와요? 명절에도 꼭 왔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