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검찰이 A(66)씨에게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취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년 전인 2022년 8월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우산 보관함에서 남의 우산을 가져간 절도 혐의를 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내 우산인 줄 착각해 잘못 가져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해당 우산이 편의점에서 파는 흰색 또는 검정색 비닐 우산이 아니고 나름 고가품이었다는 점이다.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기소유예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절도범’으로 몰린 점이 못내 억울했던 A씨는 헌재의 문을 두드렸다. 재판관들은 A씨에게 절도의 고의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해 그의 손을 들어줬다.
기소유예란 특정인의 범죄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검사가 전과 유무, 반성 정도 그리고 피해자의 피해 규모나 피해자와의 합의 내용 등을 고려해 불기소하는 처분을 뜻한다. 기소를 피한다는 점에서 무혐의와 같으나 찜찜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죄를 짓지 않았느냐’는 주변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기소유예는 법원 판결이 아닌 만큼 국가공무원법상 임용 결격 사유가 아니다. 그래도 간발의 차이로 당락이 엇갈리는 각종 채용 시험에서 기소유예 전력이 있는 응시자는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현직 공무원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경우 징계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현행법상 검찰이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할 방안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위헌 법률 심판이나 탄핵 심판처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처리해야 할 헌재가 그런 자잘한 일까지 맡아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무혐의냐, 기소유예냐는 한 인간으로서 명예가 걸린 일 아니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은 헌재의 업무 부담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 취소 기능을 헌재에서 법원으로 옮기는 법률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헌재는 “국민의 재판 청구권 보장에 도움이 된다”며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 대법원은 “기존 형사사법 체계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력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도마에 올랐다. 김 후보자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 제약업체 B사 측의 부탁을 받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B사의 코로나19 치료제가 임상시험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24년 12월 검찰은 김 후보자가 B사에서 금품을 받거나 한 사실은 없다는 점을 들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은 31일 이 점을 거론하며 ‘법무장관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검찰 처분 직후 김 후보자는 검찰을 겨냥해 “그 잘난 ‘법 기술’을 발휘해 기소유예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김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기소유예 처분 및 취소 절차를 둘러싼 현행법 체계의 대대적 정비가 불가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