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이 거대한 권한을 쥔 ‘공룡’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 눈에는 ‘불신(不信)’이 가득 차 있다. 장윤기 사건 부실수사 등 지역 경찰들의 각종 비리가 노출되며 경찰 기강 해이와 구조적 비리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주 실종사건을 허위종결한 부모 경장의 범행 동기가 업무태만으로 드러난 가운데 올해 전체 징계자 10명 중 4명이 수사지연, 부실수사, 업무태만 등 ‘성실의무 위반’에 해당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징계 항목 중 올해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올해 7월 기준 139명으로 벌써 지난해(159명) 수준에 근접한 상황이다. 전체 징계자 수도 올해 358명을 기록했다.
수사권 집중으로 수사와 조직 관리 등 업무량이 폭증하고 있지만 이를 소화할 경찰 조직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아울러 사건을 스스로 덮을 수 있는 ‘불송치 결정권’ 등 무소불위의 재량권이 통제 부재와 결합해 비위 유혹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징계 600명 전망…부실수사 급증세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징계를 받은 경찰관 수는 2021년 493명이었으나 2024년 536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7월 기준 334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 한 해 전체 징계자 수만 600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매일 약 1.6명꼴로 경찰관이 비위로 인해 내부 징계를 받고 있는 셈이다.
◆권한 비대해진 경찰과 브로커의 ‘유착’
경찰 비위가 늘어나는 주요 배경으로는 수사권 조정 이후 커진 권한에 비해 내부 통제 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이 꼽힌다.
경찰이 사건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불송치 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개별 수사관과 관리자들의 재량권이 비약적으로 확대됐고, 사건 무마나 감형을 노리는 브로커와 이권 개입 세력이 검찰 대신 경찰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찰청 수사팀장 A경감은 2023년 7월 조직폭력배 출신 브로커와 결탁해 수천억원대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 수사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총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곧 수배가 떨어진다”고 미리 알려준 데 이어, 체포 하루 전날 밤 “내일 잡으러 간다”고 집행 계획까지 유출해 총책의 도주를 도왔다. 대구지법은 부정처사후수뢰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A경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00만원과 추징금 741만원을 선고했다.
검찰 수사권의 단계적 폐지로 인한 일선 경찰의 과부하도 비리 증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2021년 수사구조 개편 이후 수사관 1인당 사건 부담률이 30%가량 폭증하고 평균 사건 처리기간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동안 내부 통제시스템은 제 기능을 잃었다. 수사관 개인이 떠안은 사건 수가 한계치를 넘어서면서 지휘부의 자체 감사와 수사 지도가 형식적인 서류 절차로 전락했고,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인 사각지대에서 내부 비리나 엄정성 결여 문제가 연이어 불거진 것이다.
한 일선서 경찰관은 “처우는 그대로인데 업무만 늘어나니 베테랑들은 본서에서 탈출해 지구대로 도망가기 바쁘고 중앙관리직 등 핵심 부서의 역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땜질식 처방 한계…“새 시스템 구축해야”
경찰은 장윤기 사건 논란이 불거진 지난 7월부터 부실수사·지역유착 등을 방지할 쇄신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지역유착을 예방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순환인사제 도입을 예고하는 한편, 현재 총경 이상은 통상 1년 주기 전국 단위, 경정은 약 2년 주기로 경찰서 간 전보가 이뤄지는데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
또 경찰 비리 조사를 위해 국가경찰위원회 산하에 차관급 감찰관과 조사관 100명이 합류하는 별도 민간기구도 설치된다.
사건 배당 과정의 공정성을 높인다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상 수사 사건 무작위 배당제도도 도입한다. 여기에 일선 경찰서마다 외부 법률가를 수사심사관으로 배치해 수사 과정의 적정성을 정교하게 따질 방침이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급하게 쥐어짜내는 ‘땜질식 처방’은 이미 구조화된 경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준비 없는 수사권 이양으로 경찰 권한만 비대해졌을 뿐 정작 수사 현장은 심각한 과부하와 시스템 공백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게 금품을 주고 불송치를 유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증가할 텐데 이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마 더 큰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