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한 명만 빼고 8명을 잃었습니다.”
1일(현지시간) 오후 네팔 누와코트 비두르 2동 행정사무소에 꾸려진 이재민 쉼터에서 만난 뿌띠만 따망(51)은 “죽은 가족들을 찾다가 어제 쉼터에 들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쉼터에 와 모든 동을 돌아봤지만 가족들은 없었다”고 했다.
네팔 대홍수 이재민 120여명이 생활하는 이 쉼터에는 봉사자들이 분주히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남성들은 방 3칸 크기의 공간에서 35명이 생활하고, 다른 동에선 비를 막기조차 어려운 정자에 천막을 치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여성들과 아이들 45명은 2칸짜리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
나빈드라 프라드한(59)은 군에서 제공하는 임시대피소에서 5일간 지내다 헬기로 구출됐다. 그는 비두르 지역에 있는 장모의 집을 네 가구, 총 18명의 대피소로 삼고 있다고 했다. 강 건너편인 트리슐리 바자(시장) 인근에 살았다는 프라드한은 “홍수가 났을 때 상류 지역에 살던 친척 전화를 받고 급히 대피했다”며 “1분 차이로 물이 들어오면서 간발에 차로 피했다”고 했다. 그는 “절벽에 가까운 산을 맨손으로 탔다”며 “길도 없었지만 무작정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군대가 마련한 임시대피소를 찾아갔다”고 말했다. 84세 할머니와 7살짜리 아이도 함께였다.
프라드한은 “어젯밤 10시쯤 대피령이 울려 언덕 위로 다같이 올라갔다”며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지는 2차 피해 우려에 아이들 8명은 성인 보호자 손에 맡겨 카트문드로 보냈다.
2일까지 비 예보가 나오면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에서 22년간 활동한 네팔인 수전 조쉬(41)는 “정부가 사고 초기 해외 전문 구조팀을 받지 않은 것은 큰 실수”라며 “이미 골든 타임이 지났다”고 했다. 그는 “네팔 정부가 구조에 들고 가는 장비는 로프와 같은 전통적인 도구들 뿐”이라고 말했다. 네팔 정부는 앞서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외국 구조대의 직접적인 수색·구조활동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 구조대가 우후죽순 활동할 것이 문제라면 관리할 방법을 찾는 게 정부의 일”이라며 “전면적으로 활동을 막아 생명을 살릴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인 실종자 9명에 대한 수색 속도를 높이고 있다. 네팔 정부는 이날 외국 구조대의 수색을 불허했던 방침을 바꾸고 해외 긴급구호대 파견을 요청했다. 정부는 네팔 정부 요청에 따라 홍수 피해 지역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를 파견했다. 지난달 26일 라수와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로 사망자, 실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다. 구호대 규모는 44명으로 이 중 37명이 소방청 소속이다. 여기에 대장을 맡은 이규호 개발협력국장 등 외교부 직원 3명,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직원 4명이 포함됐다. 네팔 측이 요청한 고해상도 드론을 비롯해 매몰자 음향·영상탐지기, 열화상탐지기, 수중펌프 등 각종 장비와 함께 구조견 5마리도 데려갔다.
군수송기 편으로 이날 자정 출국한 구호대는 약 10일간 현지에서 네팔 정부와 소통·협력하며 연락이 닿지 않는 국민을 포함한 피해자 수색·구조활동을 수행한다. 파견 기간은 현장 상황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각 11명, 9명 규모의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을 파견해 헬기·드론·육상탐색 등 수색을 진행해 왔다. 구호대는 신속대응팀과 힘을 합쳐 그간 진행해 온 수색의 범위와 폭을 한층 넓힐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실종자 수색을 위한 구조 인력과 헬기 등 가용장비 추가 투입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네팔 정부, 기업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조기 수색에 만전을 기해 달라”며 “수색 인력 안전에도 각별히 주의하고, 네팔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서둘러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전날 육로를 통해 네팔 바그마티주 어퍼트리슐리(UT)-1 발전소 인근으로 이동한 뒤 드론 1대를 띄웠다. 드론은 한국인 실종자들이 있던 발전소 사무동과 상부 위어 댐 상공을 비행하며 현장 영상을 촬영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현장 영상을 정밀 분석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활용하고,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 한국남동발전과도 공유할 계획이다. HD현대는 홍수로 피해를 본 네팔 중북부 바그마티주 지역의 복구작업을 위해 중형 굴착기 20대를 보내고, 담요와 식기, 위생용품, 방수포 등 구호물품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네팔·티베트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1003명으로 늘었고, 4400여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CNN은 “진흙과 돌, 각종 잔해가 섞인 홍수물은 밟으면 발을 빼기도 어려울 정도로 진득한 상태”라며 “액체 시멘트처럼 굳어가고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네팔 당국은 여러 곳의 발전소 터널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 640명의 근로자 구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흙으로 가득 찬 터널 3곳에선 시신 4구가 수습됐지만 아직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