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 결과 ‘정상’이고, 40대인데 설마 심장에 문제가 있겠어.”
가슴이 답답하거나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쉬운 나이다. 과로려니, 체했으려니 한다. 하지만 최근 배우 이용주(44)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3040에게도 심장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웠다.
tvN ‘푸른거탑’으로 얼굴을 알린 이용주는 지난달 29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심근비대증을 앓아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젊다고 심장이 갑자기 멈추지 않는 건 아니다. 질병관리청 통계를 들여다보면 그 숫자가 생각보다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30대 3.5%, 40대까지 합치면 10% 넘어…50세 미만만 하루 13명꼴
질병관리청과 소방청이 지난해 12월 함께 내놓은 ‘2024 급성심장정지조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이송한 급성심장정지 환자는 모두 3만3034건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64.7명꼴이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발생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통계에서 30대는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여기에 40대까지 더하면 3040만으로도 전체의 10%를 웃돈다. 20대 이하까지 포함한 50세 미만 전체 비중은 14.7%로, 단순 환산하면 연간 약 4856건, 하루 평균 13건이 넘는 셈이다.
이는 ‘돌연사로 숨진 사람 수’가 아니다.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이송한 급성심장정지 환자 수이며, 심정지를 겪었더라도 심폐소생술과 이후 치료를 거쳐 살아서 퇴원한 사람도 포함돼 있다. 이 통계를 그대로 ‘젊은 나이 돌연사 4900명’으로 바꿔 부르면 원래 의미와 달라진다.
전체 연령을 놓고 보면 급성심장정지의 76.7%는 질병이 원인이었다. 심장 자체 기능 부전이거나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심인성 심장정지가 71.7%를 차지했다.
◆젊은 심장은 다르게 멈춘다…40대부터는 혈관질환도 무시 못해
나이에 따라 심정지의 원인도 달라진다. 유럽심장학회(ESC)는 젊은 연령층의 돌연심장사 원인으로 비대성 심근병증, 부정맥유발성 심근병증 같은 구조적 심장질환과 선천성 관상동맥 이상, 심근염 등을 꼽는다.
심장 구조 자체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전기 신호에 문제가 생겨 치명적 부정맥으로 이어지는 유전성 ‘채널병증’ 역시 젊은 층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원인이다.
그중 비대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혈액을 내보내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치명적 부정맥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질환이다.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운동할 때 흉통이나 호흡곤란, 두근거림, 어지럼증, 실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3040의 심정지를 모두 ‘근육과 전기 문제’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심장협회(AHA)·미국심장학회(ACC) 자료를 보면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 4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의 비중이 빠르게 늘어난다.
흡연,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같은 위험요인이 겹치면 젊은 나이에도 관상동맥질환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운동 중 반복되는 흉통,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신, 심한 두근거림이나 호흡곤란이 있다면 나이를 핑계로 넘겨서는 안 된다. 가족 중에 젊은 나이에 원인 모를 돌연사나 심정지를 겪은 사람이 있는지도 눈여겨봐야 할 단서다.
◆“검진에선 정상이라 했는데”…심전도 없는 국가검진, 범위부터 알아야
직장인이 매년 받는 일반 국가건강검진에 정확히 무엇이 포함되는지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재 일반건강검진 공통항목에는 문진과 진찰, 신장·체중·허리둘레 측정, 혈압, 흉부 방사선 촬영, 공복혈당과 간·신장 기능을 보는 혈액검사, 요검사 등이 들어간다. 심전도와 심장초음파는 기본 검사항목이 아니다.
국가검진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맥이나 심근병증 같은 심장질환 가능성이 모두 배제됐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증상 없는 3040 모두가 심전도와 심장초음파를 따로 받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무증상 저위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일률적인 심전도 선별검사는 이득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침도 있다. 중요한 건 증상과 가족력에 따라 필요한 검사를 골라 받는 것이다.
심전도는 심장의 전기적 활동과 일부 부정맥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심장초음파는 심장 근육의 두께와 움직임, 판막 기능 등을 평가한다.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 짧은 심전도 검사로는 잡히지 않는 경우, 의료진 판단에 따라 홀터 검사 같은 활동성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특히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의 부모·형제자매·자녀 같은 직계가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심장협회·미국심장학회가 2024년 개정한 비대성 심근병증 진료지침은 발병 위험이 있는 무증상 직계가족을 대상으로 심전도와 심장초음파를 이용한 선별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생존율 6.1%→14.4%, 그 차이를 만든 건 ‘옆 사람’이었다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심장이 실제로 멈춘 순간의 대응이다. 2024년 급성심장정지 환자의 전체 생존퇴원율은 9.2%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4년(4.8%)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병원 도착 전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경우 생존율은 14.4%까지 올라갔다. 일반인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한 경우의 생존율은 6.1%에 그쳤다. 2.4배 차이다. 뇌기능회복률도 심폐소생술 시행군이 11.4%, 미시행군이 3.5%로 3.3배 벌어졌다.
누군가 갑자기 쓰러져 반응이 없고 정상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면, 그 순간 곧바로 119에 신고하고 주변에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요청해야 한다.
질병관리청과 대한심폐소생협회는 5년 만에 손을 봐 지난 1월 「2025년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을 새로 내놨다. 성인 심장정지 환자에게는 분당 100~120회 속도, 약 5㎝ 깊이로 가슴압박을 하도록 하는 원칙은 이전과 같이 유지됐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쓸 수 있다면 최대한 빨리 사용하고, 인공호흡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시행이 어려운 일반인이라면 가슴압박만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심장정지는 나이를 확인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40대라는 이유로 흉통과 실신을 과로 탓으로 넘기는 것도, 반대로 아무 증상 없이 무작정 정밀검사를 늘리는 것도 답은 아니다.
반복되는 이상 신호와 가족력을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 쓰러졌을 때 주저 없이 가슴압박을 시작하는 것. 젊은 심장을 지키는 출발점은 의외로 이 두 가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