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 공기청정기로 이름을 알린 다이슨이 이번에는 욕실로 들어왔다. 첫 제품은 칫솔이다. 가격은 74만9000원. 단순히 모터로 칫솔모를 움직이는 제품이 아니다. 카메라가 치아 사이를 찾아내면 인공지능(AI)이 위치를 판단하고 액체까지 자동으로 쏜다.
전동칫솔 시장이 ‘누가 더 잘 흔드느냐’에서 ‘누가 사용자의 입속을 더 정확하게 읽느냐’의 싸움으로 옮겨가고 있다. 오랄비와 필립스 같은 기존 강자에 샤오미 등 가전·IT 기업까지 뛰어든 가운데 다이슨이 카메라와 유체 기술을 앞세워 도전장을 던졌다.
다이슨은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전동칫솔과 구강 세정기를 하나로 합친 ‘다이슨 카메라젯(CameraJet)’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잡이에 들어간 10만 화소 매크로 카메라다. 카메라가 초당 28장의 이미지를 분석하고 AI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치아 사이의 위치와 방향을 추적한다. 치간을 인식하면 약 0.1초 안에 해당 부위로 액체를 분사한다. 머신러닝 시스템 개발에는 47만장 이상의 치아 이미지가 활용됐다.
다이슨은 기존 물치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를 쏘는 대신 원뿔 형태로 액체를 넓게 뿌리는 방식을 택했다. 본체 안에는 12.5㎖ 액체 탱크가 들어가며 기기를 기울이거나 수평으로 잡아도 일정하게 분사하도록 설계했다. 제품 개발에만 6년이 걸렸고 661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했다. 다이슨이 관련 기술로 출원한 특허도 38건에 이른다.
칫솔 자체도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안쪽에는 상대적으로 단단한 칫솔모를, 바깥에는 부드러운 칫솔모를 배치해 치아 표면과 잇몸선을 각각 닦도록 했다. 브러시 헤드에는 RFID 태그를 넣어 사용 횟수를 인식하고 교체 시점도 알려준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도 지원한다. ‘마이다이슨’ 앱의 라이브뷰 기능을 켜면 칫솔의 카메라를 통해 입안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카메라는 라이브뷰나 자동 분사 기능을 사용할 때만 작동하며 영상은 제품이나 클라우드에 저장하지 않는다는 게 다이슨 설명이다.
국내 판매가는 74만9000원이다. 세라믹 핑크와 세라믹 울트라 블루 두 가지 색상으로 출시되며 다이슨코리아 공식몰에서는 예약판매에 들어갔다.
다이슨이 처음 만든 것은 전동칫솔이지만 ‘스마트 칫솔’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존 구강관리 강자들은 이미 AI와 센서, 앱을 앞세워 시장을 넓혀왔다.
P&G의 오랄비는 프리미엄 제품인 ‘iO’ 시리즈에 AI 칫솔질 인식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iO9·iO10 등 일부 모델은 3차원 치아 추적 기능을 이용해 입안을 최대 16개 구역으로 나눠 어느 부위를 닦았는지 앱에서 보여준다. 압력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약할 때도 센서가 알려준다. 오랄비는 AI가 1000개 이상의 칫솔질 행동 패턴을 학습했다고 설명한다.
필립스도 ‘소닉케어 9900 프레스티지’를 통해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핵심은 ‘SenseIQ’ 기술이다. 칫솔에 들어간 센서가 양치 압력과 움직임, 닦는 범위 등을 초당 최대 100회 감지한다. 사용자가 지나치게 세게 닦으면 진동 강도를 조절하고 소닉케어 앱에서는 놓친 부위를 3D 구강 맵으로 보여준다. AI 기반 맞춤형 가이드도 제공한다.
차이는 있다. 오랄비와 필립스가 센서로 사용자의 손 움직임과 칫솔 위치를 추론하는 데 집중했다면 다이슨은 칫솔 자체에 카메라를 넣어 ‘직접 본다’는 쪽으로 한 발 더 나갔다. 여기에 구강세정기 기능까지 한 몸에 넣은 것이 승부수다.
가전·IT 업체의 구강관리 시장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샤오미다. 국내에서도 판매 중인 ‘미지아 스마트 서보 진동 전동칫솔 프로’에는 6축 자이로스코프와 컬러 LCD가 들어간다. 칫솔이 치아 표면을 인식해 닦은 상태를 화면에 표시하고, 놓친 부위도 알려준다. Xiaomi Home 앱에 연결하면 세정 강도와 개인 맞춤형 양치 모드도 설정할 수 있다.
샤오미는 전동칫솔뿐 아니라 구강세정기도 별도 제품군으로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웨어러블로 제품군을 넓혀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욕실 속 소형가전까지 자사 생태계 안에 넣고 있는 셈이다.
일본 파나소닉 역시 ‘돌츠(Doltz)’ 브랜드를 통해 전동칫솔과 구강세정기 시장을 공략해왔다. 구강세정기에는 미세 기포가 터질 때 발생하는 충격을 이용한 ‘초음파 수류’ 기술을 적용했고, 일부 전동칫솔은 블루투스를 통해 전용 앱과 연동된다.
전동칫솔 시장에서 기술 경쟁의 축이 모터에서 센서와 소프트웨어,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구강관리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에는 꾸준한 성장성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동칫솔 시장은 2024년 43억6000만달러 규모에서 2030년 68억2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환율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원화로 9조원 안팎에 해당하는 시장이다. 2025~2030년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7.8%다.
한국 시장도 비슷하다. 국내 전동칫솔 시장은 2024년 1억4160만달러에서 2030년 2억2170만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역시 연평균 성장률은 7.8%다.
구강질환 자체가 워낙 흔하다는 점도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3월 공개한 구강건강 팩트시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구강질환을 앓는 인구는 약 37억명으로 추산된다.
다이슨은 자체 구강관리 조사 결과를 근거로 10명 중 9명이 권장 수준만큼 치실을 사용하지 않고 평균 칫솔질 시간도 45초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수치는 WHO 통계가 아니라 다이슨이 2017년 실시한 ‘Oral Care Usage & Attitudes Study’에서 나온 결과다.
이 틈을 기업들은 ‘기술’로 파고들고 있다. 치실을 쓰지 않으면 기계가 대신 물을 쏘고, 어느 치아를 빼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AI가 알려주는 식이다.
시장에서는 다이슨이 헤어드라이어와 스타일러 시장에서 보여준 전략이 구강관리에서도 통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기존에 저가 제품으로 인식되던 생활가전에 모터와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가격대를 끌어올렸던 전략을 칫솔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74만9000원이라는 가격은 대중적인 전동칫솔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결국 소비자가 ‘카메라로 보고 치간까지 자동 세정한다’는 편의성에 얼마만큼의 값을 지불하느냐가 관건이다.
분명한 것은 칫솔이 더 이상 칫솔모와 모터만으로 경쟁하는 제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랄비가 AI로 양치 습관을 읽고, 필립스가 센서로 압력을 조절하며, 샤오미가 화면과 스마트홈 앱을 붙인 데 이어 다이슨은 카메라까지 집어넣었다. 스마트 가전의 전쟁터가 거실과 주방을 지나 욕실, 그리고 사람의 입속까지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