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끝나지 않은 김민석의 ‘오디세이’

귀환 서사로 모험 견딘 영웅처럼
18년 ‘광야’에서 돌아온 김 대표
분열·민생·공소취소 등 난제 산적
‘3心’의 파도 넘어설 ‘이타카’ 있나

“설혹 신들 중에서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주빛 바다 위에서 또 한 번 산산조각 낸다 해도 저는 설움을 견디는 기백을 품고 가슴속에서 참아내렵니다. 파도 속에서, 전쟁 속에서 저는….” 고대 그리스 이타카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오랜 억류 끝에 사랑과 함께 불멸의 삶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귀향을 선택한다. 신이 아닌 필멸의 인간 운명을 선택하는 이 장면은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핵심적 장면이다.

전략가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12척의 배를 이끌고 부하들과 귀향길에 오른다. 하지만 일행은 이스마루스라는 곳에서 신의 뜻을 거역하고 소와 돼지를 몰래 잡아먹고, 시실리에선 포세이돈의 외눈박이 아들의 눈까지 멀게 한다. 신의 노여움을 산 일행은 10년간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겪어야 했다.

김용출 논설위원

지금이야 161석 거대 여당을 이끄는 수장으로 주목받지만,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당대표도 오디세우스처럼 ‘정치적 야인’으로 여의도를 떠돈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오디세우스 10년의 두 배 가까운 18년 동안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른둘의 나이로 국회에 입성했고, 재선에 성공한 뒤 2002년 지방선거에선 여당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꿰차며 일약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장 선거에서 패하고,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당을 떠나 ‘철새’라는 오명을 쓴다.



그의 야인 생활은 길고 혹독했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미국 럿거스대 등에서 유학하고 2008년 당 최고위원으로 재기하는 듯했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됐다. 우여곡절 끝에 원외정당을 창당해 2016년에야 합당 형식으로 당에 복귀하고 4년 뒤 총선으로 국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시기를 김 대표는 ‘광야 생활’이라고 비유하며 “겸손, 겸손, 겸손의 3겸의 다짐이 저를 지켰고, 공부, 공부, 공부하는 정치가 저를 키웠다”고 넉넉하게 회고했지만, 기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이 시기 그의 모습은 오히려 잿빛이다. 아마 2015년 문재인 대표 체제의 권혁기 공보실장 부친상 빈소였을 것이다. 당시 권 실장은 문 대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터라 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이 조문을 왔는데, 당 밖 원외의 김 대표 역시 초저녁부터 빈소를 찾았다. 의원들과 인사하거나 담소를 나눴지만, 빈소 한쪽 구석에 홀로 앉아 있던, 처진 어깨의 그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재명정부 첫 총리를 지낸 그가 여당 대표에 오르며 유력 대권후보로 자리매김했다. 각종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범여권 1위를 달린다. 하지만 난제가 수두룩하다. 전당대회 기간 불거진 당의 갈등을 해소하고 단합을 이뤄내야 한다. 당심을 챙기며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 민심과 직결된 민생 현안을 챙기는 일도 막중한 임무다. 이때 민심이 반응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과한 복종·갈등’ 사이에서 삐걱대는 당청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 당심과 민심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 취임 직후 ‘당정일치’와 함께 꺼낸 ‘창조적 수평관계’란 말에서 그의 고민이 묻어난다. 대통령 기소 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나 연임 개헌 문제 등은 민심과 당심, 명심 모두를 뒤흔들 수 있다.

긴 시간 표류했던 김 대표가 이번엔 민심과 당심, 명심이라는 ‘3심(心)’의 파도 앞에 섰다. 대통령 지지율이 7주 연속 하락하며 30%대를 기록하는 등 여건도 녹록하지 않다. 전략가형 정치가 김 대표는 3심의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가 긴 표류를 견디고 살아남은 건 ‘이타카’라는 북극성 같은 존재, 인간의 운명을 선택한 용기 때문이다. 김 대표 역시 3심의 파도에 좌초하지 않으려면 근면성실을 넘어선 비전과 철학, 전략이라는 ‘북극성’과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집으로 가서 귀향의 그날을 보게 되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바라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라는 오디세우스의 노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