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에 보트 띄워 맨눈 수색”… 희생자 가족 DNA 채취 돌입도 [네팔 대홍수 현장을 가다]

참혹한 시신 사진 화면 뜰 때마다 “혹시나…” 애끊는 가족들

수색 군경 구명조끼·노가 전부
신원파악 안된 시신 임시 매장
외국인은 본국에서 DNA 분석

홍수 발생지서 200㎞ 거리 치트완
강 끝까지 시신들 수없이 밀려와
DNA 채취 시작… 최소 12주 소요

韓 대응팀 실종자 9명 수색 강화
정부 파견 긴급구호대 현지 도착

CNN “빙하 수일 전부터 붕괴 조짐
히말라야 조기경보 시스템 개선을”

“수색 일주일이 되어 가는데 어제도 유해 17구를 수습했다.”

 

네팔 군과 경찰로 구성된 수색대는 2일 오전 8시(현지시간)부터 네팔 치트완 나라야니강으로 들어갔다.

 

네팔과 중국 국경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이후에도 밤이면 비가 와 강의 수위는 여전히 높았다. 흙탕물 안에는 나무기둥과 쓰레기 등 부유물이 파도를 만들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경찰은 “고무보트를 타고 강 위쪽에 올라가 닻을 내린 뒤 떠내려오는 물체를 하나씩 건져올려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한 뒤 보트에 몸을 실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건 작은 보트와 구명조끼, 노가 전부다.

지난 1일(현지시간) 네팔 경찰관들이 치트완에서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 희생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치트완은 대홍수가 시작된 티베트·네팔 접경지역에서 200㎞ 이상 떨어진 곳이다. 당시 많은 양의 물이 빠르게 내려오면서 강 끝에서 수습된 시신들은 성치 않았다.

 

인근에 위치한 치트완 엑스포 센터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센터 강당에는 한살배기로 보이는 아기의 주검과 성인 남녀의 훼손된 신체 사진이 떠 있었다. 상반신만 남았거나 발목 아래, 두피가 벗겨진 사진 등이 적나라하게 게시됐다. 신원 확인을 위해 치아의 상태를 보여주거나 반지나 귀고리, 문신이나 손톱의 매니큐어 등을 확대한 사진들도 있었다.

 

한 남성이 급히 경찰에게 “반지를 낀 것을 보니 내 제부가 맞다”며 “형은 병원을 전전하다가 이웃의 제보를 받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일순간 적막이 깨지기도 했다. 실종자 지인 10여명은 금세 몰려 함께 사진들을 응시했다. 경찰이 ‘직계 가족이냐’, ‘해당 반지를 착용한 사진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강당에 있던 10여명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경찰이 “제부는 관계가 너무 멀다”며 “직계 가족이 찾아와 왜 시신을 인계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어 당장은 시신을 인계할 수 없다”고 말해 소동이 일단락됐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센터 외부 임시 천막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의 유전자(DNA) 채취가 진행됐다. 실종자 수색과 구조, 유해 수습에 일주일이 넘게 걸리면서 시신이 부패하자 네팔 정부는 신원을 즉시 확인하거나 안전하게 보존하기 어려운 경우 유해에서 DNA를 채취해 보관한 뒤 시신을 임시 매장하고 있다. 가족 DNA 확보는 추후 신원 확인을 하기 위한 절차다.

 

외국인 실종자 같은 경우 직계 가족들이 본국에서 DNA 분석을 진행하도록 한다. 네팔 외교부 측은 해외에 있는 직계 가족에게 거주 국가에서 DNA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네팔 경찰 공식 이메일로 접수 중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오전 네팔 수도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한국 정부가 파견한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도착해 장비 등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KDRT는 네팔 당국과 협력하면서 지난달 26일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뒤 연락이 두절된 한국인 9명 등 피해자를 수색·구조하는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카트만두=연합뉴스

다만 이런 식으로 직계 가족 DNA가 확보되더라도 대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네팔 정부가 DNA 분석 장비와 인력 등을 해외로부터 지원받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 대홍수 발생 이후 일주일 동안 유해 수습이 진행되면서 신원 불명자가 많은 것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엑스포센터에서 만난 한 보건 관계자는 기자에게 “오늘 가족 DNA 채취가 시작됐다. 3시간여 동안 8명의 시료를 채취했다”며 “(DNA 분석까지는) 최소 12주는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가 인원을 파견해 한국인 실종자 9명에 대한 수색을 강화했다. 외교부는 전날 오후 네팔 카트만두에서 기자들과 만나 “네팔군과 함께 육로 수색을 진행하고 드론을 통해서도 봤지만 안타깝게도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과 29일 2차례 파견된 정부합동 신속대응팀 소속 수색대 9명은 네팔 정부의 헬기 운용 불허가 등 상황에 따라 9명의 ‘육로수색팀’을 꾸려 네팔 바그마티 둔체 지역에서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둔체는 한국인 실종자들이 근무한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상부 위어댐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이다. 대응팀은 네팔군과 함께 육로 수색을 진행하고 드론과 헬기를 동원해 상공 수색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전 네팔에 도착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대응팀에 합류해 수색작업을 진행했다. KDRT는 해외에서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재난구호, 인명구조, 의료구호 등 피해국 지원을 위해 정부 부처와 관계기관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구호대다. KDRT 파견은 12번째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처음 가동됐다.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는 1100명을 넘어섰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팔 재난관리청이 집계하는 네팔 내 대홍수 사망자는 1114명으로 늘어 중국 측 사망자 16명과 합하면 전체 1130명이 됐다. 실종자는 네팔 쪽에서 3916명(외국인 590명), 중국에서 546명(외국인 261명) 등 총 4462명이다.

韓 실종자 찾아… 저인망 수색 네팔 대규모 홍수로 연락이 두절된 한국인 9명을 수색하기 위해 파견된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이 2일(현지시간) 네팔 라수와 지역 람체에서 트리슐리강 상류 지역 수색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라수와=연합뉴스

대홍수 발생 전부터 빙하에 뚜렷한 변화 징후가 있었으나 해당 지역에는 관련 재해에 대비한 조기경보시스템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미 방송 CNN은 산악 환경의 위험도를 추적·감시하는 과학 컨소시엄 ‘하이리스크’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초기 조사 결과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하이리스크는 보고서를 통해 “붕괴 며칠 전부터 녹은 물이 눈에 띄게 갈색으로 변하고 균열이 주변 암반 경사면으로 퍼져나가는 징후 등 몇 가지 사전 징후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붕괴 직전에는 빙하 내부의 물 흐름 속도도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하이리스크는 하류 지역에 10분 이상 경고할 수 있는 종합 조기경보시스템이 있었다면 상당수의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히말라야 지역의 경보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