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5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지.”
전북도 고창에 사는 고순자(74·여)씨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다.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노인일자리로 벌고,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생활비에 보탠다. 생활이 빠듯한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예전보다 씀씀이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정부가 내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을 현재 17개 군에서 35개 군으로 늘린다는 소식을 듣자 “매달 15만원이 더해진다면 생활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우리 지역이 꼭 선정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정부가 내년 농어촌 기본소득 예산을 4배 가까이 증액하고 시범사업 지역을 확대하는 등 농업·농촌의 소득·경영 안전망 강화에 나선다. 공익직불 예산을 처음으로 3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농산물 가격안정제를 새로 도입한다. 청년농 육성과 인공지능(AI) 기반 농업혁신, K푸드 해외진출 등 농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도 확대한다.
먼저 농촌 지역주민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원하고 지역에 활력을 더할 수 있도록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을 현재 17개 군에서 내년 35개 군으로 확대한다. 인구감소지역 69개 군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예산도 올해 3047억원(추가경정예산 포함)에서 1조1658억원으로 3.8배 늘었다.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비 지원 비율도 현재 40%에서 50%로 높인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월 15만원씩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첫 시범사업에 참여한 10개 군의 주민등록 인구는 9개월 만에 4.9% 증가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추경에서 5개 군을 추가할 계획이었으나 기존 사업지역을 제외한 59개 군 중 44개 군이 신청하면서 최종 7개 군을 선정했다.
내년 예산안에는 농가 소득과 경영 안전망을 강화하는 사업 예산도 증액됐다. 공익직불 예산은 올해 2조9703억원에서 내년 3조615억원으로 늘려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선다. 기본형 직불은 비진흥지역 밭의 지급단가를 논 수준으로 인상해 지급 격차를 줄이기로 했다. 밭 비진흥지역 단가는 헥타르(㏊)당 138만~150만원에서 170만~187만원으로 25% 인상된다.
전략작물직불은 선제적인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적정면적을 반영하고 지급단가를 인상한다. 친환경농업직불은 지원 면적과 단가를 모두 확대하고 동물복지축산직불도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주요 농산물의 평균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하는 농산물 가격안정제도 도입한다.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한 농축산물 할인지원에는 942억원을 투입한다. 국산 신선 농축산물 중 가격이 오른 품목이나 대체 소비 품목, 명절 등 수요가 증가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대형마트와 중소형마트, 온라인몰 등에서는 20%, 전통시장에서는 30%의 할인 혜택을 지원한다.
◆청년농업학교 신설·AI 확산 ‘미래투자 확대’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지원도 확대한다. 농업에 도전하는 청년의 준비를 돕기 위해 이론과 현장실습을 연계하는 ‘청년농업학교’ 과정을 신설하고, 영농 초기 영농정착지원금(월 최대 110만원)과 후계농육성자금(1조13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청년농이 활용할 수 있는 농지도 확보해 내년 공급 규모를 680㏊까지 늘린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농업 생산성 향상에도 속도를 낸다. 연구개발(R&D) 수준에 머물던 농업 분야 피지컬 AI 확산을 위해 현장 실증 사업을 새로 시작하고, AI농업 로봇 210대를 현장 보급할 계획이다. 스마트축산단지도 내년 신규로 441억원을 투입해 3개 단지를 조성한다. AX(AI전환) 데이터·산업 기반 마련을 위해 AX플랫폼 구축에 180억원을 투입하고, 비즈니스센터·실증센터·생육지원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투자를 두 배 늘린 145억원 편성했다. 농식품 분야 R&D 예산은 내년 2740억원으로 편성해 피지컬 AI와 그린바이오, 재생에너지, 고부가가치 식품 등의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K푸드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K식자재 해외진출지원자금 1360억원을 신규 편성하고, 넥스트 K푸드 육성을 위한 예산도 세 배 이상 늘린 200억원을 마련했다. 수출 원료구매자금은 4000억원을 지원하고, 해외 복합형 거점 물류센터 지원 규모는 내년 100억원으로 두 배 확대한다.
농업 재정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기금 구조개편에도 나선다. 농지관리기금과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자유무역협정(FTA)기금을 통합해 가칭 ‘농업발전기금’을 신설하고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에서 기금으로 재원을 전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특세 세입 증가로 확보된 재정여력을 농업·농촌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충실히 투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