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친화적인 감성과 칼날 손상이 적다는 이유로 원목 도마나 나무 수저, 나무 그릇을 애용하는 가정이 많다. 하지만 요리 후 남은 기름때와 음식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일반 합성 주방세제를 수세미에 듬뿍 묻혀 거품을 내 닦는 습관은 위험천만한 역효과를 부른다.
미세한 숨구멍을 지닌 목재 특성을 무시한 채 일반 식기처럼 세척할 경우, 세제 속 계면활성제가 나무 깊숙이 침투해 굳었다가 다음 조리 때 음식물로 고스란히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세제 빨아들이는 목재 도관… 헹궈도 안 빠져
플라스틱이나 유리, 스테인리스 도마와 달리 나무도마는 수분과 양분을 이동시키던 무수한 ‘도관(숨구멍)’ 조직을 그대로 품고 있다. 물과 액체를 흡수하고 팽창·수축을 반복하는 다공성 구조다.
이 위에 계면활성제가 고농도로 함유된 액체 주방세제를 바르고 문지르면, 세제 성분이 미세한 도관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문제는 아무리 흐르는 물로 겉면의 거품을 씻어내도 이미 목재 내부로 스며든 세제 분자는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구멍이 많은 전통 뚝배기를 세제로 닦았을 때 발생하는 세제 잔류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칼자국 틈에 갇힌 계면활성제, 뜨거운 국물·열기 닿으면 재용출
특히 칼질로 인해 표면에 미세한 흠집(칼자국)이 많이 난 나무도마는 세제 흡수율이 배 이상 치솟는다. 나무 섬유질 틈새로 스며든 화학 성분은 도마가 건조되면서 내부에 고체 상태로 엉겨 붙는다.
이후 도마 위에서 갓 삶은 뜨거운 수육이나 전을 썰거나, 나무 주걱·수저로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저을 때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열기와 수분에 의해 굳어있던 계면활성제가 도관 밖으로 다시 녹아 나오면서(용출) 음식물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상 ‘세제를 탄 음식’을 매일 섭취하는 꼴이 된다.
합성 계면활성제를 장기간 만성적으로 섭취할 경우 위장 점막을 자극해 소화기 장애나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식기세척기·뜨거운 물도 금물… 갈라진 틈은 곰팡이 온상
세균 번식을 막겠다며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끼얹거나 식기세척기 고온 살균 코스를 돌리는 것도 나무 식기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다.
급격한 온도 변화와 고온의 수증기는 목재를 비틀리게 만들고 접합면을 쪼개지게(크랙 현상) 한다. 이렇게 갈라진 틈 사이로 음식 찌꺼기가 끼어들면 세척이 불가능해져 도마 내부에 검은 곰팡이가 집단 서식하는 최악의 위생 환경이 조성된다.
‘굵은 소금 문지르고 건조’… 오일 코팅으로 방어막 쳐야
나무도마와 나무 식기를 세제 없이 위생적으로 관리하려면 ‘흡수 차단’과 ‘물리적 세척’ 원칙을 지켜야 한다.
사용 직후 미온수로 음식 찌꺼기를 가볍게 헹군 뒤, 표면에 굵은 소금이나 베이킹소다를 뿌려 문지른다. 소금의 삼투압 작용과 입자의 마찰력이 도마 속 냄새와 기름기를 흡착해 빼내 준다.
살균이 필요하다면 물과 식초를 1대 1로 섞은 식초수나 레몬 조각을 문질러 5~10분쯤 방치한 뒤 헹궈낸다.
세척 후 마른 천으로 물기를 즉시 닦아내고, 직사광선을 피해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세워서 말려야 뒤틀림과 곰팡이를 막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도마 전용 천연 오일이나 건성유(포도씨유 등)를 얇게 펴 발라 흡수시키면 표면에 방수막이 형성돼 수분과 오염 물질의 침투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이때 산패 위험이 높은 올리브유나 들기름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감성적인 주방 소품으로 사랑받는 나무 식기류는 일반 그릇과 관리법이 완전히 다르다.
“기름때는 세제로 씻어야 안심”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올바른 세척법을 적용해야 가족의 건강과 식기의 수명을 함께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