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선율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작곡가는 왜 이런 음악을 썼을까. 아름답거나 비통한 선율에는 어떤 시대와 삶이 숨어 있을까. 음악 평론가인 저자의 ‘문학이 음악이 되는 순간’은 이런 질문에 문학으로 답한다. 바흐부터 시벨리우스까지 클래식 24곡을 헤밍웨이, 카뮈, 도스토옙스키, 괴테, 카프카, 오웰 등의 문학작품과 연결해 익숙한 음악을 새로운 시선으로 들려준다.
흥미로운 대목 가운데 하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다. 당초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이 곡을 헌정하려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격분해 헌정 문구를 찢어버렸다.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과 ‘에로이카’를 연결해 권위와 기존 질서에 저항한 베토벤의 정신을 들여다본다.
유인재/아르테/2만5000원
교향곡 제5번의 유명한 ‘운명’도 새롭게 읽힌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함께 살펴보면 반복되는 고통과 싸우며 자신의 삶을 밀어붙이는 인간의 모습이 음악 속에서 겹쳐진다. 반대로 교향곡 제7번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만나 춤과 도취, 삶의 충만함을 이야기한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위대한 개츠비’와 연결된다. 완성되지 못한 음악과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개츠비의 꿈을 나란히 놓으면서 ‘미완성’이라는 말이 반드시 결핍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준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에서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베토벤의 거대한 이상을 의식했던 브람스가 첫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2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통해, 저자는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인간의 가치를 짚는다.
저자는 클래식 음악을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역사의 후손이자 시대의 산물’로 바라본다. 음악이 태어난 시대와 작곡가의 삶, 문학과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면 익숙했던 곡도 전혀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책에는 작품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추천 음반과 연주 해설도 곁들였다. 문학을 읽고 음악을 듣고, 다시 음악을 통해 문학을 떠올리는 경험이다. 문학의 문장으로 클래식의 비밀을 푸는 품격 있는 인문 음악 안내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