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이방인 작가가 포착한 한국의 얼굴들

“구미코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천장의 종이학을 보고 있다.(1966)” 일본 포토 저널리즘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가운데 유난히 눈을 뗄 수 없었던 사진의 제목이다. 미나마타에 관한 이 사진을 보고 그의 작업, 신념, 철학, 삶을 카메라에 담은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에 관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왜 그의 사진들은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가? 대답은 그의 사진 속에 있다. 그가 포착하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 던져진 인간의 존엄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언론들이 도쿄 올림픽에 몰입해 있을 때 그는 미나마타를 만났고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언론에 노출을 피하던 피해자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비틀리고 휘어진 육체를 드러낼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가 저널리즘, 혹은 다큐멘터리스트의 윤리에 관해 말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질문, 바로 촬영자와 촬영 대상 사이의 신뢰의 문제, 즉 카메라는 대상에게 믿음을 주는가에 대해 그가 미나마타 주민들과 오랜 동안 쌓아온 시간은 신뢰를 만들어냈다.



그의 태도는 미나마타에 국한되지 않았다. 60년간의 포토저널리스트로서 그가 애착을 갖고 헌신해온 또 다른 테마는 대한민국이다. 그가 셔터를 누른 백만 건의 사진 가운데 10여 만장이 한국을 촬영한 것이다. 1965년 한·일 수교반대 시위 촬영으로 시작된 작업은 부산, 거문도, 거제, 문경, 동두천, 의정부, 김포, 청계천, 2024년의 광화문, 심지어 북한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을 아우르는 방대한 공간에서 다양한 주제의 사진으로 남았다. 촬영 과정에서 일본 쪽바리가 왜 우리를 찍느냐는 거친 항의와 봉변을 당하기도 했고 남북한 당국으로부터는 취재 제한과 입국 금지 조처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촬영된 흑백사진들은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땀흘리며 오열해온 민중의 표정을 깊이 있게 기록한다.

이 사진들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청계천의 빈곤을 찍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사진에는 가난함 속에서도 빛나는 민초들의 강한 생명력이 있다.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된 사람들의 고통과 비애, 그리고 생명력. 역사의 뒤안길에서 오열하며 사라져간 무명인들을 기록하며 함께 울었던 이방인 사진가. 그의 사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카이브이다.

그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기록한 유일한 종군기자였고 죽기 전에 통일한국에서 자유롭게 왕래하는 남북을 기록하고 싶은 소망을 지닌 현재진행형 사진작가였다. 그는 사진은 오직 역사의 연장선 상에서만 현재의 사건을 기록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작업했고, 인간의 한계 상황을 기록하는 현장에서 울거나 눈물 흘리거나 사진 찍기를 포기하는 자는 보도사진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는 태도로 작업했다. 뜨겁고도 냉철한 눈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람들을 기록한 사진 작가 구와바라 시세이께 경의를 표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