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에너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합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기능에 따라 분리하는 ‘공공기관 기능개혁’을 추진한다. 기능이 유사하거나 소규모인 기관을 통폐합해 전체 공공기관의 20%를 감축하고,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통폐합 대상에 오른 기관이 가진 수조원대의 부채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3일 제11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구조개혁 대상 공공기관은 109개로 전체의 20% 수준이다. 전략적 구조개혁을 통해 15개, 유사·중복기능 일원화를 통해 11개, 자회사·소규모기관 통합을 통해 83개를 각각 줄인다.
중동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발전 5사와 석유·가스 공사를 각각 통합한다. 발전 부문에서는 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5개사를 가칭 ‘한국발전’이라는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한다. 2001년 전력사업에 경쟁구조를 구축한 지 25년 만에 다시 하나로 묶이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 체계에서 발전 5사의 설비와 건설, 운영, 연료 수급, 재생에너지와 연구개발(R&D) 등을 각각 추진해 온 탓에 역량이 분산돼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발전사별로 연간 500억원 안팎의 R&D 비용과 2000억원 규모의 재생에너지 건설사업을 진행 중인데, 통합 이후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국가 차원의 석유·가스 전략 수립을 위해 하나로 합친다. 두 기관을 통합하면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산유국이나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역별로 나뉜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도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한다. 정책·기획 기능은 하나로 합치고 기존 항만공사는 4개 지역지사로 바꿔 지역별 특화사업을 수행하게 한다.
정치권에서 제기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통합은 당장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기존에 인천으로 집중된 국제선 노선이 지방공항 적자와 불균형을 가속화시킨다는 판단하에 허브공항과 지방공항 간의 동반성장 전략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기능이 겹치는 기관은 대대적인 통폐합을 진행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은 가칭 ‘한국방송미디어통신진흥원’으로, 노사발전재단과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은 가칭 ‘노사발전교육재단’으로 통합한다.
자회사가 모회사와 유사하거나 연관된 업무를 맡고 있으면 모회사가 흡수하고,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회사끼리는 수평 통합한다. 금융 공공기관의 시설관리 자회사 5개는 가칭 ‘정책금융FMC’로 합치고 고객관리 자회사 2개도 가칭 ‘정책금융CS’로 통합한다.
공공기관 개혁의 밑그림은 나왔지만, 통폐합 과정에서 기존 기관이 가진 부채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석유공사의 경우 2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가 걸림돌이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자산보다 2조5000억원 이상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2024년부터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가스공사가 이 부채를 그대로 떠안으면 가스공사 재무구조까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LH 개혁에서도 부채 처리가 과제로 꼽힌다. LH는 그동안 택지개발로 조성한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얻은 수입 등으로 공공임대주택 건설·운영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는 ‘교차보전’을 해왔다. 공공임대주택이 늘면서 임대주택 운영 손실이 확대되어왔다. LH의 부채는 작년 말 기준 173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6000억원 증가했고, 부채비율은 217.7%에서 230.8%로 높아졌다. 이번 발표에서는 173조원대 부채를 두 공사에 어떻게 배분할지 등 구체적인 재무 개편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청산 대상에 오른 대한석탄공사 역시 2조59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부채 청산 재원을 마련한 뒤, 대한석탄공사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조속히 청산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공공기관 이전·기능 개혁 방안 발표와 맞물려 공공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기조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엑스(X)에 “주요 인프라의 민영화는 종국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늘린다”며 철도·전기·수도·공항·항만 등의 민영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