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민숭달팽이 도감/고동범 글·DEPC 외 사진/자연과생태/3만8000원
검푸른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마치 SF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생물이 눈앞을 스친다. 꽃잎처럼 화려한 몸에 뿔처럼 솟은 촉각을 달고, 꽃다발 같은 아가미를 펼치거나 온몸에 돌기를 두른 모습이다. 낯설고 기묘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리 바다에서 살아가는 갯민숭달팽이다.
‘갯민숭달팽이 도감’은 그동안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우리 바다의 갯민숭달팽이 265종을 한 권에 담았다. 고동범 제주 연강병원 원장이 글을 쓰고, DEPC(Digital Eco Photo Club) 회원을 비롯한 다이버들이 직접 바닷속에서 촬영한 사진을 실었다.
갯민숭달팽이는 바다 연체동물인 복족강 가운데 겉껍데기(패각)가 퇴화해 몸이 드러난 무리다. 측새목·나새목·두순목·군소목·낭설상목 등에 속하는 종을 통틀어 부른다. 육상 민달팽이가 비교적 수수한 모습인 데 비해 갯민숭달팽이는 화려한 색과 독특한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색찬란한 몸에 저마다 다른 무늬를 두르고 있으며 촉각과 아가미, 돌기의 형태도 종마다 다르다.
움직임도 흥미롭다. 몸 아래쪽의 넓고 평평한 근육성 발을 이용해 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일부 종은 외투막 가장자리를 물결치듯 움직이며 바닷속을 유영한다. 작은 몸으로 너울너울 헤엄치는 듯한 모습은 갯민숭달팽이의 또 다른 매력이다. 스쿠버다이버들이 바닷속에서 이들을 발견하면 반가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도 생김새를 짐작하게 하는 종들이 많다. 꽃잎갯민숭달팽이, 흰눈송이갯민숭달팽이, 구름갑옷갯민숭달팽이, 별사탕갯민숭달팽이, 고양이불꽃갯민숭달팽이 등이다. 아직 우리말 이름이 붙지 않은 종도 수록해 사진을 보며 독자가 직접 이름을 붙여보는 재미도 더했다.
이 책의 의미는 단순히 아름다운 바다 생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록된 265종 가운데는 황해에만 서식하는 종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주변 해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종, 차가운 동해 환경에 적응한 종들도 있다. 갯민숭달팽이라는 작은 생물을 통해 우리 바다가 얼마나 다양한 생명체를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물학적 기록이다.
저자 고동범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면서 35년째 다이버이자 패류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에 정착한 뒤 사설 ‘고패류연구소’를 열어 한국산 패류 1000여 종과 외국산 패류 4000여 종의 표본 수만 점을 수집했다. 제주 해양생물을 촬영한 사진도 9000여 장에 이른다. ‘한국패류도감’, ‘한국후새류도감’, ‘한국개오지류도감’ 등을 펴내며 해양생물 연구와 기록에도 꾸준히 힘써왔다.
책에 실린 사진에는 우리 바다를 직접 누빈 다이버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수심과 계절, 조류가 달라지는 바다에서 손톱만 한 생물을 찾아내고 카메라에 담은 결과다. 저자는 해양환경 악화와 생물다양성 감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처럼 다양한 갯민숭달팽이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다를 사랑하는 다이버들의 꾸준한 관찰과 촬영 덕분이라고 말한다.
‘갯민숭달팽이 도감’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바닷속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 하나하나의 가치와 바다 생태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