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체 공공기관의 20%를 줄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효율화’를 기치로 한국전력공사 산하의 발전사 5곳을 통합하고,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합치는 등 109개 공공기관에 대한 통폐합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개혁의 목표가 “비용 절감에 있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대상 기관들이 가진 수조원대의 부채와 지역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4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의 공공기관 기능개혁은 크게 세 갈래로 추진된다. 전략적 구조개혁(15곳)과 유사·중복기능 일원화(11곳), 자회사·소규모기관 통합(83곳)을 통해 총 109개 기관을 줄이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앞서 박근혜·윤석열정부 당시 공공기관 개혁의 슬로건으로 ‘파티는 끝났다’를 내세운 것과 관련해 “(당시에는) 공공기관의 비효율성, 방만 경영을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이번에는 인공지능(AI) 대전환이라든가 상존하는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융합적이고 선제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차원”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중동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는 발전 5사와 석유·가스 공사를 각각 통합한다. 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5개사는 가칭 ‘한국발전’으로 통합된다. 정부는 기존 체계에서 발전 5사의 설비와 건설, 운영, 연료 수급, 재생에너지와 연구개발(R&D) 등을 각각 추진해 온 탓에 역량이 분산돼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발전사별로 연간 500억원 안팎의 R&D 비용과 2000억원 규모의 재생에너지 건설사업을 진행 중인데, 통합 이후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상 기관의) 80% 이상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발전사의 경우 개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형식상으론 바로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국가 차원의 석유·가스 전략 수립을 위해 하나로 합친다. 에너지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두 기관을 통합하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해 산유국이나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역별로 나뉜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도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한다. 정책·기획 기능은 하나로 합치고 기존 항만공사는 4개 지역 지사로 바꿔 지역별 특화사업을 수행하게 한다. 허장 재경부 2차관은 “에너지·항만 등 국가 인프라와 관련된 공공기관의 기능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해 급격한 정책 환경 변화와 미래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항만공사가 위치한 지역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항만공사(IPA) 노조는 정부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중앙 집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항만공사를 다시 중앙집권화하는 것은 시대 역행”이라며 “물리적 통합은 지역 항만의 특성을 무시하고 세계적 항만 운영 흐름에도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항만공사가 위치한 지역사회에서도 “옥상옥 행정”이라는 지적과 함께 지역마다 각기 다른 배후 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통합이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통폐합 이후에도 기존 지역의 조직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통폐합을 하면 어느 한곳이 본부 역할을, 다른 한곳이 본사 역할을 하는 식으로 기능을 구분하게 될 것”이라며 “통합이 이전을 전제로 추진된 것은 아니다. 통합이 결정된 기관을 대상으로 향후 이전 여부를 별도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폐합 대상 기관이 가진 막대한 부채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석유공사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자산보다 2조5000억원 이상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 조직 분리를 추진하는 LH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173조7000억원에 달한다. 청산 대상에 오른 대한석탄공사 역시 2조590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부채는 각 기관의 상황에 따라 정책적으로 결정될 부분”이라면서도 “부채에 대해 엄중하게 보고 있고, 별도의 트랙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편 대상에 오른 109개 기관의 직원은 약 12만명 규모로 정부는 집계했다. 정부는 통폐합 전후로 처우가 저하되지 않도록 보수 체계를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수가) 높은 기관과 낮은 기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차등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며 “기관별·직렬별로 수준이 모두 달라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한편, 관련 주무부처와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관 통합으로 본사가 한 곳으로 정해질 경우 지역 인재 채용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는 “지역 인재 채용은 본부별로도 채용이 가능하게 돼 있어서 (통합 후에도) 문제가 없게끔 조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