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키는 이제 다 컸어” 158㎝ 최단신 상금왕 골퍼가 세운 기적

158㎝ ‘작은 거인’ 히가 가즈키의 골프 인생
신한동해오픈 2회 우승…아시안게임 日 대표로

“학생, 키는 이제 다 컸네.”

 

발을 다쳐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 속 닫힌 성장판을 가리키며 무심히 말했다. 고교 2학년, 이미 국가대표에 뽑힌 유망주였다. 매일 아침 철봉에 매달리고 키가 큰다는 보충제까지 삼키며 1㎝라도 늘려보려던 그에게, 그 한마디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일본 남자 골프 역대 최단신 상금왕 히가 가즈키. 히가 가즈키 SNS 캡처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의 키는 158㎝. 일본 남자 골프 역대 최단신 상금왕은 그렇게 태어났다.

 

열 살에 빠진 골프… 멈춰버린 성장판

 

히가 가즈키(31)는 1995년 일본 오키나와현 우루마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운동은 골프가 아니라 핸드볼이었다.

 

인생을 바꾼 건 열 살 때였다. 아버지를 따라 미군 소유 골프장에 갔다가 2번 홀에서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훗날 히가는 일본 스포츠매체 넘버와의 인터뷰에서 그 순간을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날 밤 부모에게 선언했다.

 

“프로골퍼가 될 거예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핸드볼을 병행하면서도 매일 골프공 500개를 쳤다. 쉬는 날이면 오전 7시부터 연습장에 나가 하루 3000~3800개의 공을 때렸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섬 밖 원정비가 부담이 되자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의 동행 없이 혼자 원정을 다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확신했다.

 

“이런 아이가 프로가 안 된다면, 대체 어떤 사람이 프로가 되겠어요.”

 

그렇게 골프 명문인 오키나와현립 모토부고에 진학했고, 고교 2학년 때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프로가 되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무렵 발을 다쳐 찾은 병원에서 성장판이 닫혔다는 말을 들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키 순서로 뒤에서 서너 번째였지만 어느새 줄 맨 앞으로 밀려나 있었다.

 

우유도 보충제도 소용없었다. 근력운동을 하면 키가 안 큰다는 말에 웨이트트레이닝까지 피했지만 키는 그대로였다.

 

키를 더 키울 방법은 없었다. 대신 몸을 바꾸기로 했다.

 

“키가 안 큰다면 이제 근력운동을 하자.”

 

그날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 작은 몸을 단단한 근육으로 채웠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코어카드 오기로 막힌 프로의 길

 

2017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일본프로골프투어 퀄리파잉스쿨(QT)에 도전했다. 그런데 수백 번도 더 작성했을 스코어카드에 점수를 잘못 적었다. 결과는 실격. 한순간의 실수로 일본 투어 출전 길이 막혔다.

 

갈 곳을 잃은 히가는 아시아 하부투어로 눈을 돌렸다. 첫 무대는 방글라데시였다. 주최 측과 연락조차 닿지 않아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일단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입국심사에서 붙잡혔지만 우연히 만난 일본 선수의 도움으로 겨우 입국해 대회장에 도착했다.

 

며칠 뒤 히가는 우승컵을 들었다. 프로 첫 우승이었다. 일본에서 막힌 프로의 길을 방글라데시에서 다시 열었다.

 

2022년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왕에 오른 히가 가즈키. 히가 가즈키 SNS 캡처

 

일본 최단신 상금왕, 한국에서도 통했다

 

2019년 마침내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첫 승을 신고한 히가는 2022년 4승을 쓸어 담으며 일본 남자 골프 역대 최단신 상금왕에 올랐다. 그 4승 중 하나가 신한동해오픈이었다. 재일교포들이 모국 골프 발전을 위해 만든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히가는 한국 골프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히가 가즈키가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KPGA 제공

 

3년 뒤 히가는 다시 정상에 도전했다. 지난해 9월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 최종일, 출발부터 네 홀을 내리 버디로 몰아쳤다. 한때 1타 차까지 쫓겼지만 끝까지 리드를 지켜 우승컵을 들었다. 가장 작은 선수가, 필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해 히가는 아시안투어 상금 레이스 선두를 끝까지 지켜 일본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즌 종합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신한동해오픈에서 샷을 하고 있는 히가 가즈키. KPGA 제공

 

멈춘 건 키뿐…아시안게임 무대까지

 

히가는 올해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일본 남자 골프 대표에 뽑혔다. 일본이 프로를 아시안게임에 내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PGA 투어에서 뛰는 나카지마 게이타와 함께 홈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그에 앞서 오는 10일 개막하는 신한동해오픈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선다. 한·일 아시안게임 대표들이 맞붙는 전초전이기도 하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히가의 키는 여전히 158㎝다. 하지만 골프장에서 그 숫자는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다. 히가는 작은 키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골프에서는 180㎝가 넘는 큰 선수들과도 겨뤄 이길 수 있어요. 다른 종목이었다면 체격 차이로 맞붙을 기회조차 없었을 선수들이죠. 제가 활약한다면 프로골퍼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나 다른 종목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158㎝의 히가 가즈키와 192㎝의 일본 프로야구 전설 사이토 가즈미. 키 차이는 34㎝다. 히가 가즈키 SN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