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가죽에서 첨단 기술까지…월드컵 축구공 속에 숨은 역사

완벽한 구(球)와의 싸움…매끄러운 공이 만든 돌발변수
호날두 머리 맞았나?…억울함 풀고 오프사이드 잡는 축구공 첨단 기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흑백 축구공, 과연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들던 축구공은 이제 첨단기술의 집약체로 진화하고 있다. 1930년 첫 월드컵 결승전에서 자국 공을 쓰겠다고 주장한 시절부터 골 논란을 데이터로 증명해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월드컵 공인구의 변천사를 짚어본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사용된 축구공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제공

 

◆ 지구촌을 사로잡은 오각형과 육각형의 축구공

 

흔히 축구공이라 하면 흰색 정육각형과 검은색 정오각형이 맞물린 모습을 떠올리지만, 처음부터 이와 같은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당시에도 국가마다 사용하는 공은 제각각이었다. 이 때문에 결승전에 오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서로 자국의 공을 쓰겠다고 주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전반전은 아르헨티나 공을 사용해 아르헨티나가 2대1로 앞서갔지만, 우루과이의 공으로 바꾼 후반전은 우루과이가 4대2로 경기를 뒤집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경기용 공을 통일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34년부터 1966년까지 개최국이 지정한 ‘인정구’를 사용했다. 피파가 직접 제작한 공인구가 등장한 것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다. 이때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축구공이 ‘텔스타’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축구공은 불규칙성을 줄이기 위해 완벽한 구형에 가깝게 제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정육각형의 변에 정오각형과 또 다른 정육각형을 교대로 맞붙이면 구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흰색 정육각형 20개와 검은색 정오각형 12개, 총 32개의 면을 이어 만든 축구공이 탄생했다. 여기에 흑백텔레비전 화면에서 공이 잘 보이도록 고안된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축구공 디자인의 유래가 됐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전 전반전에서 사용된 아르헨티나의 축구공(왼쪽)과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쓰인 공인구 ‘텔스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 제공 

 

◆ 구(球)를 향한 기술이 낳은 뜻밖의 논란

 

이렇게 개발된 축구공의 기본 구조는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패널 수를 14개로 줄이고 최초로 열접착 방식을 채택한 공인구 ‘팀가이스트’가 도입됐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는 8개의 3D 패널에 돌기를 새기고 이음새를 내부로 넣어 완벽한 구형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뜻밖의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자블라니는 의도치 않은 무회전 슛을 만들어 찬 사람도 막을 사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궤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2010년 프랑스 마르세유 운동과학연구소 부소장 에릭 베르통은 “자블라니는 이음새가 매끄럽고 지나치게 공이 둥근 탓에 발과의 접촉 시간이 극히 짧다”며 “이로 인해 공을 차도 회전이 거의 걸리지 않아 궤적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 엑스(X·옛 트위터) 계정 ‘FIFAWorldCup’ 캡처

 

테니스, 야구, 골프 같은 구기 종목에서는 공의 궤적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표면을 의도적으로 불규칙하게 설계한다. 특히 골프공 표면에 파인 홈(딤플)은 공 주변에 미세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뒤에서 끌어당기는 공기 저항을 줄이고 위로 뜨는 힘을 높여 비거리를 늘려준다.

 

만일 이러한 홈이 없다면 표면이 매끄러운 비치볼이나 풍선처럼 처음에만 힘있게 나아가다 금세 속도가 줄어든다. 공 앞쪽의 압력은 높고 뒤쪽의 압력은 낮아지면서 공을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인 공기저항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경기 후반 9분, 브루누 페르난드스의 득점을 두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자신의 골이라고 주장하자 공인구 제조사 아디다스가 공개한 진동 그래프.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제공

 

◆ 첨단 기술 집약한 축구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18’은 처음으로 내부에 센서장치가 내장된 공인구이다. 근거리무선통신(NFC) 칩을 내장해 스마트폰으로 경기 데이터 조회가 가능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는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내부 축에 관성측정장치(IMU) 센서를 탑재해 초당 500회 빈도로 공에 가해진 충격을 감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회 최초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정’ 기술을 구현해냈다. 

 

실제로 알 리흘라의 IMU 센서는 판정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 우루과이의 경기에서 후반 9분 브루누 페르난드스의 크로스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헤더를 시도한 후 골망을 흔들었고 호날두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하지만 약 5분 뒤 공식 득점자는 페르난드스로 정정됐다. 

 

호날두는 경기 후 친한 방송인에게 “공이 내 이마에 닿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공인구 제조사인 아디다스는 당시 경기 데이터가 담긴 진동 그래프를 공개해 의혹을 잠재웠다. 페르난드스가 공을 찰 때는 그래프가 요동쳤지만, 호날두가 헤더를 시도한 순간에는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