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곳에 쓰이길” 이름 숨긴 청년의 첫 알바비, 봉투에 담겨 도착했다

얼굴 없는 천사가 사는 곳, 전주 노송동 ‘천사마을’. ‘얼굴 없는 천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12월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세운 ‘얼굴 없는 천사의 비’. 사진=전주시 제공

지난 3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복지팀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봉투 안에는 현금 15만원과 손으로 눌러 쓴 글이 함께 들어 있었다.

 

보낸 사람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청년이었고,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돈은 첫 아르바이트로 받은 일당 전액이라고 전해졌다.

 

5일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청년은 편지에 “첫 아르바이트로 받은 일당을 가장 소중한 곳에 쓰고 싶어 고민 끝에 주민센터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 기부하게 된 사정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오현순 노송동장은 “노송동이 ‘천사 마을’로 알려지면서 사랑의 기부가 이어져 옴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번 성금은 액수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했다.

 

동장이 말한 ‘천사 마을’이라는 이름에는 26년째 이어진 다른 익명의 기부가 있다.

 

노송동의 익명 기부는 2000년 4월에 시작됐다. 한 초등학생의 손을 빌려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이 당시 동사무소에 전해졌고,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 달라는 말이 함께 남았다.

 

보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해마다 성탄절 전후면 같은 방식의 기부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30일 오후 3시43분쯤에도 노송동 주민센터로 전화가 걸려 왔다.

 

“기자촌 한식뷔페 앞 소나무에 상자를 뒀으니 좋은 곳에 써 달라”는 말이 전부였다.

 

직원들이 찾아낸 복사용지 상자 안에는 5만원권 다발과 동전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세어 보니 9004만6000원이었다.

 

이로써 이 익명 기부자가 27차례에 걸쳐 남긴 돈은 모두 11억3488만2520원이 됐다.

 

성금은 형편이 어려운 주민에게 현금과 연탄, 쌀로 전달됐다.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잇기 어려운 지역 학생들의 장학금과 대학 등록금으로도 쓰였다.

 

돈이 쌓이는 동안 동네도 바뀌었다. 전주시는 2009년 기부자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고, 2010년에는 주민센터 앞 750m 구간 도로 이름을 ‘얼굴 없는 천사의 거리’로 바꿨다.

 

2011년부터는 일대를 ‘천사마을’로 가꾸는 사업이 이어져 주민 문화공간과 테마존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천사를 떠올리게 하는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해마다 나눔 행사를 연다.

 

매달 4일에는 어르신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미용 봉사와 문화누리카드 장터를 열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기부자는 노송동 밖에도 있다. 전주 인후3동에는 2024년 6월부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손편지와 성금을 함께 보내는 익명 기부자가 있다.

 

올해 6월까지 24차례, 모두 812만원이 모였고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18세대에 각 30만원씩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노송동에 닿은 11억3488만2520원을 27차례로 나누면 한 번에 4203만원꼴이다.

 

첫 기부가 있었던 2000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30일까지 25년 9개월 남짓을 하루 단위로 나누면 하루 12만원 정도가 된다.

 

한편 노송동 주민센터는 오는 28일까지 ‘추석 명절 이웃사랑 나눔 창구’를 운영한다.

 

전주시가 지난달 26일부터 벌이고 있는 추석맞이 이웃사랑 나눔 행사의 일부로, 시내 35개 동 주민센터에 접수창구가 설치돼 있다.

 

시는 이번 행사로 3억원 규모의 성금과 물품을 모아 저소득 취약계층과 사회복지시설에 백미와 과일, 생활용품 등을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박은주 전주시 복지환경국장은 “추석은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라며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