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가을 단풍나무처럼 보이는데 저게 다 재선충병에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여. 올해 봄여름 내내 소나무가 제 색을 못 띠고 죄다 저 지경이여.”
6일 오전 충남 태안 남면 몽산리에서 만난 주민 길태순(78)씨는 혀를 끌끌 찼다. 해안가를 따라 곧게 뻗은 해송(海松) 군락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모두 재선충병에 감염돼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다. 수백년간 마을을 지켜오던 야산의 소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집단 고사했다.
소나무림이 전체 산림의 약 70%인 태안은 재선충병이 덮치며 ‘푸른 소나무숲’이 무너지고 있다. 태안군 관계자는 “재선충병이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고사시키는 수준을 넘어 관광지 경관과 해안 송림, 생활권 주변 산림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 불치병’이라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은 소나무 재선충을 보유한 매개충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이동하며 옮긴다. 나무 조직 내로 들어가 곰팡이 등을 먹이로 삼으며 줄기와 가지, 뿌리 속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재선충 크기는 암컷 0.7∼1.0㎜, 수컷 0.6∼0.8㎜로 흰색을 띠고 투명하다. 상온에서 수명은 약 35일이고 산란 수는 100개 안팎이다. 가을철 매개충이 알을 고사목에 산란하면 재선충은 겨울과 초봄 사이 매개충이 월동할 때 침투해 기생한다. 1988년 부산 동래구 금정산 소나무에서 처음 확인된 소나무 재선충병은 2014~2016년 2차 대발생 이후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3차 대발생 단계에 접어들면서 피해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남권과 경기·제주 일부 지역에 집중됐던 피해가 충청·호남·강원 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확산 속도가 빨라진 배경엔 기후변화에 따른 겨울철 가뭄과 봄철 고온 현상이 꼽힌다. 기온 상승으로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재선충병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극심’ 단계인 포항·경주·울산(울주)·안동·밀양·창녕의 감염목이 67만그루로 전국의 38%를 차지한다. ‘심’ 단계인 구미·대구(달성) 등 21개 시·군·구의 감염목 77만그루가 전국의 44%로 절반 가까이 이른다. 27개 시·군·구 감염목이 전체의 82%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이달 ‘국가재선충병 방제단’을 출범시켜 재선충병 확산을 국가가 차단하는 국가 중심 방제로 전환했다. 지자체별로 차이가 큰 방제 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산림청에서 가용 역량을 결집해 구성한 소나무 재선충병 대응조직이다. 현장을 정밀하게 관리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방제로 소나무 재선충병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게 목표다. 수종을 소나무에서 활엽수 등으로 전환하는 사업도 올해 4000㏊에서 2030년까지 10만㏊로 늘릴 계획이다. 천적·미생물 등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 등 친환경 방제 기술도 도입한다. 정종국 강원대 교수(산림환경보호학)는 “대규모 방제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별 발생에 신속히 대응하는 상시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검증된 내병성 수종을 전국 산림에 광범위하게 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