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 동신대 에너지연구소장 “호남 반도체 산단은 유기체… ‘인프라 시간표’ 맞춰야” [차 한잔 나누며]

“전력·용수·환경 동시 구축 필요
병목 분야 대통령급 과제 관리를
에너지정책, 선언 아닌 실천할 때”

“전력·용수·환경·교통·인재·정주·산업생태계를 모두 같은 시간표로 구축하고, 어느 하나가 흔들리더라도 전체가 멈추지 않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동신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순형 특임교수(전기공학)는 지난달 31일 전남광주 나주 동신대 혁신융합캠퍼스에서 기자를 만나 정부가 추진 중인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에 대해 “공장 몇 동을 한곳에 모으는 개발사업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신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순형 특임교수는 지난달 31일 전남광주 나주 동신대 혁신융합캠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담론에 대해 “실행을 위한 현장 기반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순형 교수 제공

이 교수는 “개개 기반시설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서로의 기능과 추진 일정에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단은 거대한 유기체로 볼 수 있다”며 “반도체 생산시설이 심장이라면 전력망은 혈관이고 원수·초순수·폐수처리체계는 순환계, 통신·관제·보호시스템은 신경계”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전기안전 분야 공학박사이자 전기기술사인 이 교수는 여러 호남권 지자체의 관련 기구에 속해 활동하며 탄소중립·에너지 자립 정책에 깊이 관여해 온 인사다.

이 교수는 지난해 6월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호남지역에 재생에너지가 풍부하지만 계통 포화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과 관련해 “지역에 기업이 와서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년 정도 지나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호남 반도체 산단 사업이 이런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체계) 원칙에 기반한 것이다.

 

이 교수는 당시 제안에 대해 “호남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산업과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다시 막대한 송전망 비용과 갈등을 떠안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라며 “전기를 보낼 길을 더 놓기보다 전기가 있는 곳에 산업을 놓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호남 반도체 산단 사업에 대해서도 “결국 대한민국에 전기가 없는 게 아니라 전기가 있는 곳과 산업 입지가 어긋나 있다는 ‘지리적 불균형’을 정부가 인정한 결과”라고 평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메가프로젝트 점검회의에서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옳은 방향이다. 반도체는 시간 싸움이므로 관계기관 절차를 병렬화하고 병목은 대통령급 과제로 관리해야 한다”면서도 용수, 송전, 주민 수용성 등의 “냉정한 현실”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장 용수 문제에 대해 “정부는 동복댐 증고(댐 높이를 높이는 공사) 등으로 하루 65만t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지만, 검증해야 할 건 최악의 가뭄에서도 보장되는 ‘신뢰 수량’”이라고 했다.

 

송전과 주민 수용성에 대해서도 “마을 인근 지중화(송전선로를 땅 속에 설치하는 일)는 지상 선로의 약 8배 정도의 비용이 든다”며 “지중화가 전부가 아니다. 노선 확정 전에 비용·편익·대안을 주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신장성·신광주 345㎸(킬로볼트) 송전망에서 산단 부지까지 약 20㎞ 송전선로를 연결해 2029년까지 1단계 선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1단계 선로와 관련해 주민 밀집 구간은 지중화하기로 했다.

호남 반도체 산단 사업에 대한 비판으로 흔히 나오는 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변동성은 24시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단과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에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주장”이라며 “간헐성·변동성은 개별 발전원의 특성이고 공급 신뢰도는 발전·송전·저장·수요·보호시스템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른 결과”라고 했다. 결국 전력망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안정적 전력 공급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 공장이 계통에 요구하는 건 총 네 가지다. 24시간 끊이지 않는 공급능력, 순간 전압 강하(계통 문제로 전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내성, 계통 관성과 주파수 안정도, 해외 고객사가 요구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 실적”이라며 “이들 과제는 서로 다른 자원이 나누어 맡아야 한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와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를 조합해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하고, 그리드포밍(전압·주파수 제어) 기술과 동기조상기(무효전력 공급·흡수 설비)는 계통 내 관성·전압을 지지하는 식이다.

 

이 교수는 “반도체 공장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 과제는 결코 전원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각 설비 역할별로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담론이 ‘이론’·‘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는 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교수는 “호남 반도체 산단 전력공급을 둘러싼 논의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보급 또한 2030년 100GW(기가와트), 2040년까지 또 몇 GW, 이런 수준의 내용만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은 선언·운동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실천을 해야 한다. 기반시설·설비를 어떻게 설계하고 제작할지에 대한 기술공학적 논의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