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학생들의 과제 작성에까지 깊숙이 들어오면서 미국 대학들이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대신 과제와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
챗봇 사용 여부를 감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수업에 직접 활용하거나 학생의 사고 과정과 학습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교육 현장을 재설계하는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미국 각지의 대학 교수와 교사들이 생성형 AI 확산에 대응해 과제 평가 방식을 다시 설계하고 AI를 수업에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볼티모어대 글쓰기 프로그램 책임자인 레이철 젤레니는 지난해 AI가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과제가 급증하자 학생들이 구글 문서에서 글을 작성하고 수정한 과정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지만 학생을 감시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올해는 과제 자체를 전면 개편했다.
학생들에게 연구논문이나 사업제안서 같은 최종 결과물만 제출하도록 하는 대신 챗봇과 나눈 대화 기록, 손으로 작성한 개요, 과제를 수행하며 느낀 점을 설명하는 영상 등을 함께 내도록 했다. 최종 결과물뿐 아니라 학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AI를 수업에 직접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볼티모어대에서는 ‘학교에서 특정 책을 금지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할 때 AI 챗봇이 책 금지를 주장하는 학부모 역할을 맡고, 학생이 이에 반박하며 근거를 제시하도록 했다. 교수는 이 과정에서 학생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주장을 펼치는지를 평가했다.
존캐럴대 공급망관리학 교수 앤드루 자이저는 온라인 공급망 시뮬레이션 게임을 학생들에게 하게 한 뒤 게임에서 내린 결정과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그는 “지금 가장 큰 걱정은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학생들이 여전히 배우고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콜로라도대의 크리스토퍼 오스트로 교수는 아예 ‘AI 시대의 글쓰기’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이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직접 논의하고 수업 규칙을 정하도록 했다.
교육기관의 대응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뉴욕시는 최근 고등학교 단계까지 생성형 AI 사용을 일시적으로 금지했으며,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도 학교가 지급한 모든 기기에서 생성형 AI 사용을 잠정 금지했다.
반면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AI 기업들은 교사와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구글도 일부 초·중·고 학생들에게 AI 챗봇을 개방하는 등 교육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린칼리지 영어 강사 애나 밀스는 AI 에이전트가 학교 온라인 학습 시스템에 로그인해 학생 대신 시험을 치르거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며, 개발사들이 교육 시스템 접속을 제한하거나 AI가 대신 작업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AI를 차단하거나 부정행위를 찾아내는 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스트로 교수는 AI 확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기술적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고교 교사 한나 샬린-페티는 “학생들이 모든 과제를 AI에 맡기는 쪽으로 빠져들지 않게 하려면 학교가 갈 만한 가치가 있고 실제로 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