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카페, 배달 플랫폼 기업들이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장사 노하우’를 소상공인에게 풀고 있다. 단순한 기부나 일회성 지원에서 벗어나 메뉴 개발부터 매장 개선, 마케팅, 경영 교육까지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호텔신라는 제주 영세 식당 한 곳을 새롭게 살리는 작업에 다시 나섰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제주특별자치도청 주관 선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 ‘맛있는 제주만들기’ 29호점으로 제주시 외도동 ‘외도이모네’를 선정했다.
‘맛있는 제주만들기’는 호텔신라가 제주도, 지역 방송사 JIBS와 함께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지역 상생 프로그램이다. 호텔이 쌓아온 조리와 서비스, 매장 운영 노하우를 영세 자영업자에게 직접 전수해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29호점으로 선정된 외도이모네는 70대 여성 식당주가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칼국수와 수제비, 닭한마리 전골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주거단지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 유입이 적고 매장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호텔신라는 오는 12월 재개장을 목표로 식당을 사실상 전면 손본다. 상권과 고객층을 분석해 메뉴를 다시 구성하고 시설 개보수와 신메뉴 개발, 마케팅·홍보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호텔신라가 ‘맛제주’를 통해 지금까지 재기를 지원한 식당은 28곳이다. 지난해 12월 재개장한 28호점 ‘한림돼지국밥’에도 상권 분석과 신메뉴 개발, 인테리어 개선, 서비스·조리 교육을 지원했다. 기존 미나리국밥과 얼큰국밥을 개선하고 김치말이 고기국수와 모닥치기 등을 새 메뉴로 추가했다.
대형 커피 브랜드도 경쟁 관계에 있는 동네 카페에 자체 상품 개발 역량을 나누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지난달 소상공인 카페 150곳을 대상으로 제8차 ‘상생음료’인 ‘상주 샤인머스캣 에이드’를 선보였다. 스타벅스 음료 개발팀이 직접 만든 레시피와 6만잔 분량의 원부재료를 소상공인 카페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스타벅스가 소상공인 카페 지원을 시작한 것은 2022년이다. 동반성장위원회,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과 손잡고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별도의 상생음료를 개발해 동네 카페가 직접 판매하도록 했다.
성과도 쌓였다. 지난달 제8차 지원까지 상생음료를 받은 소상공인 카페는 누적 1120곳, 지원한 원부재료는 47만6000잔에 달한다. 단순히 재료만 건네는 데 그치지 않고 음료 제조법과 상품 운영 노하우도 함께 제공한다.
실제 지원 매장의 매출 개선 사례도 나왔다. 앞서 제5차 상생음료를 판매한 한 카페 점주는 신세계그룹 측에 상생음료 판매 이후 매출이 10~15% 늘고 재방문 고객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노후 카페 시설 개선과 자연재해 피해 매장 복구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은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외식업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배민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메뉴 구성이나 손익 관리처럼 가게 운영에 필요한 기본 교육부터 레시피 실습, 마케팅, 온라인 판로 확대까지 실제 장사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무료로 제공한다.
2014년 시작한 배민아카데미는 2024년 10월 기준 10년 동안 외식업 종사자 27만7313명이 참여했고 교육 횟수는 3557회에 달했다. 서울·경기 교육장뿐 아니라 온라인 교육도 병행한다.
최근에는 개별 매장의 매출과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문제점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지원 범위도 넓혔다. 배민아카데미가 공개한 사례 가운데는 8주간 맞춤형 컨설팅을 받은 뒤 주문 건수가 최대 4배 수준으로 늘어난 매장도 있다. 메뉴 개발과 1인 고객 공략, 사진 촬영 등 세부 분야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의 소상공인 지원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현금이나 물품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기업이 사업 과정에서 축적한 전문성을 자영업자에게 직접 이전하는 형태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호텔신라는 호텔 셰프와 운영 인력의 노하우를 지역 식당에 전하고, 스타벅스는 음료 개발 역량을 동네 카페에 개방한다. 배민 역시 수많은 외식업 매장과 거래하며 쌓은 데이터를 교육과 컨설팅에 활용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에게 일시적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것보다 스스로 매출을 만들 수 있는 메뉴와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본업과 연결된 사회공헌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