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은 날조됐고 산업혁명도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식의 ‘유사역사학’ 주장이 확산하자 공산당 이론지가 경고하고 나섰다. 근거 없는 역사 왜곡이 중국의 대외 이미지를 훼손하고 국가 정체성과 민족 통합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는 최근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글에서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극단적인 유사역사학 주장들이 해외로 계속 퍼져나가면서 이미 우리나라의 ‘학술 담론 주도권’과 해외에서의 문화적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추스는 대표적인 사례로 “어메이산은 알프스산맥”이라거나 “영락대전이 근대 서구 문명을 탄생시켰다”는 주장을 들며 “억지스럽고 터무니없는 서사”라고 비판했다. 쓰촨성의 어메이산과 알프스산맥의 중국어 명칭인 ‘아얼베이스’의 발음이 일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서구 문명이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15세기 영락제가 편찬을 명한 백과사전인 영락대전에서 산업혁명의 성과를 통째로 베꼈다는 주장도 있다. 미적분과 증기기관이 중국에서 먼저 나왔으나 서구가 이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세에 날조된 인물이라거나 산악 지형인 그리스에서는 많은 인구와 발전된 사회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SCMP는 이런 주장이 중국과 그리스 등 다른 나라 정부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도 중국 문명이 오랜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와 함께 서구 문화의 기원을 부정하거나 주요 과학적 성과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유사역사학 주장도 일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추스는 이런 흐름이 중국의 ‘문화 안보와 이념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일부 유사역사학 서사에는 민족 분리주의 성향이 있으며 중화민족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치자의 민족적 출신을 기준으로 해당 왕조가 중국을 통치할 정당성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시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한족이 지배한 명나라를 무너뜨린 만주족의 청나라를 침략에 의해 들어선 식민 지배 정권으로 보는 일부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주장과도 겹친다.
한족 민족주의자들은 19세기 중국이 쇠퇴한 원인을 만주족의 통치에서 찾는다. 이는 정체와 개방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는 중국의 공식 역사관과는 차이가 있다. 중국공산당은 현대 중국을 명·청 두 왕조의 온전한 계승자로 여기며 신장과 티베트, 대만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다고 본다.
추스는 “이런 주장은 실제로 국가 정체성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으며 중화민족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공감대가 분열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민족 문제를 영토 보전과 발전, 안정을 지키는 핵심 요소로 보고 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강조해왔다.
중국 정부가 유사역사학 주장에 지지를 표명한 적은 없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관련 주장이 확산하는 데 대한 당국의 경계심은 커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인민일보 웹사이트와 저장성 선전부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등도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지난해에는 유사역사학과 한족 민족주의를 홍보하던 영향력 있는 SNS 계정들이 잇달아 차단됐다. 그러나 추스는 이들 계정이 폐쇄된 뒤에도 관련 콘텐츠가 더욱 분산된 형태로 확산했다고 지적했다.
추스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유사역사학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는 데 이용되면서 대중, 특히 청소년의 역사 인식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알고리즘이 이런 서사의 확성기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SNS의 콘텐츠 추천 모델에 “주류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