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구(사법연수원 22기) 대법관이 7일 6년 임기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이 대법관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 3법 중 재판소원이나 법왜곡죄는 법원이나 법관의 업무 수행에 상당한 제한으로 작용하겠지만,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지위나 역할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런 외부적 환경은 법관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재판을 함으로써 헤쳐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법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대법원의 구조와 기능, 전체 법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므로 지혜를 모아 새로운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 대법관은 “이른바 사법 3법(재판소원·법왜곡죄·대법관 증원)은 오랫동안 유지되던 재판제도나 대법원의 위상과 구조를 크게 바꾸게 될 것”이라며 “법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입법과정이 충격적이고 안타깝지만, 주권자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으로서는 앞으로 어떤 국민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입법의 배경에는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오래된 불만, 불신이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사법부의 변화 방향은 아직 남아 있는 권위적인 모습을 내려놓고 더욱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설득력 있는 재판을 하는 것일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시대가 요구하는 법적 문제에 기준을 제시하는 본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대법원의 가장 큰 문제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 있다”며 “"법원 전체의 두뇌로서의 역할, 즉 이 시대에 꼭 해결되어야 할 법적 문제를 적시에 찾아내 그 기준을 신속하게 제시하고 장단기 과제를 적절히 설정하고 해결하는 등 정책적 기능을 수행할 여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 너무 많은 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사실심의 보완기능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고, 고등법원이 그 역할을 최종적으로 감당하게 하고 전문성과 투명성이 더욱 강화된 항소심 구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대법원과 사실심 법원의 올바른 자리매김이야말로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또 “12·3 비상계엄 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께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가장 적절하게 소통하면서 사법부가 어떤 판단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원에 대한 불신은 점점 심각해지고, 비판과 변화 요구는 매섭다”며 “불신의 신뢰로 바꾸기 위해선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는 그 원인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해소해 나가려는 미래지향적인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페르시아 시인 사디의 시구를 인용하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법관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말은 사람의 재판을 담당하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새겨야 할 말”이라고 했다.
이흥구 대법관은 2020년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됐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는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창원·대구 등 지역에서 판사 생활을 한 지역 법관 출신이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상고심 선고 당시 오경미 대법관과 함께 다수의견인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이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는 인사청문 절차를 밟고 있다. 청와대와 사법부 간 견해차로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공백 상황이 반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흥구 대법관마저 후임 인선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대법원을 떠나며 대법원은 당분간 2명 공석 체제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