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복무 중 입은 상처 딛고… ‘희망의 멜로디’ 연주

‘부상군인 오케스트라’ 합숙 캠프
바이올린·클라리넷 등 10명 구성
악보 못 보던 백지 상태서 강행군
연말 첫 소규모 연주회 개최 예정

“끼잉, 끼잉.”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 위례 밀리토피아 호텔 지하의 한 공간. 굳게 닫힌 문밖으로 날 선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하나, 둘, 셋” 구령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 한가운데에서 휠체어에 앉아 활과 바이올린을 들고 강사 지도를 받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라는 강사 불호령에 똑같은 부분만 수십 차례 반복했지만 악보를 보는 그의 눈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부상군인들이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 위례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악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바로 옆에는 왼쪽 발목 부위에 보조 기구를 착용한 채 다리 사이에 첼로를 끼고 앉은 청년, 맞은편 구석에는 화상 자국이 선명한 손으로 클라리넷 운지에 진땀을 빼고 있는 청년까지. 몸이 불편한 이들이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연습실 구석구석에는 첼로와 바이올린 가방, 악보 스탠드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하얀 칠판에는 초보자를 위해 그려놓은 듯한 계이름 및 음악 이론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나라를 지키다 몸과 마음에 깊은 흉터를 안은 부상군인들을 치유하고 희망을 심어줄 ‘부상군인 오케스트라’의 4박5일 첫 합숙 캠프 현장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부상이나 정신질환 등으로 복무를 마치지 못하고 조기 전역하는 장병은 매년 1400여명에 달한다. 2020년 1509명, 2021년 1516명, 2022년 1492명, 2023년 1307명 등 매년 수많은 청춘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도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잊혀갔다.

이러한 부상군인의 명예를 위한 단체 퍼플하트는 현대차 후원을 받아 올해 3월 세계 최초 부상군인 오케스트라의 닻을 올렸다.

부상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에 걸맞은 품격 있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퍼플하트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부상군인의 명예 회복, PTSD(외상후 스트레스)를 넘어 PTG(외상후 성장)로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퍼플하트 부상제대군인 오케스트라. 이재문 기자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 5명, 첼로 3명, 클라리넷 2명 총 10명으로 구성되며 악기는 단원들의 장애 유형에 맞춰 배정했다.

군용버스 전복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전숭보(31)씨에게는 바이올린이 쥐어졌다. 현재까지 오케스트라 수석인 전씨는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즐겁다. 한 곡 한 곡 잘할 때마다 ‘어 나 이거 한다’하는 자신감도 생긴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며 꿈도 생겼다. 가수 지드래곤과 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전씨는 “제가 지드래곤을 좋아하는데 향후 3∼5년 뒤 실력이 충분해지면 무대에 같이 올라 협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악보조차 볼 줄 모르던 이들이 대다수였다.

도·레·미 계이름부터 4분음표의 박자까지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연습하고 평소에는 집에서 촬영한 연습 영상을 올리며 모니터링을 받던 이들이 창단 반년 만에 처음으로 ‘아침 먹고 연습, 점심 먹고 연습’하는 강행군에 나선 것이다.

 

수류탄 폭발 사고에 휘말려 오른손 검지 마디가 절단되고 손 전체에 화상을 입은 김종민(35) 상사는 클라리넷을 불며 비로소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고 했다. 합숙하는 동안 밤 10시가 넘도록 연습실을 지키기도 했다. 김 상사는 “다친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멜로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자 위로”라며 “상처를 입었지만 이렇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뢰 폭발로 오른발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경찰의 꿈을 접어야 했던 표성호(27·바이올린)씨 역시 “좋은 취지로 모여 합주를 하다 보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른다”고 전했다.

지도 강사들도 이들과 함께 4박5일 내내 함께 합숙하며 강습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오케스트라 창단부터 함께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도아(35)씨는 “음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비전공자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입해 연습하는 것 그 자체로 음악을 업으로 하는 저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주민(42)씨도 “처음에 잘 배울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의지가 엄청나 감동했다”며 “이제는 성공적인 공연이 무조건 가능하다.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퍼플하트 부상제대군인 오케스트라/2026.08.28./이재문 기자

부상군인 오케스트라는 올해 연말 첫 소규모 연주회를 시작으로 내년 연말부터는 정기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아울러 향후 현충일 추념식, 국군의 날 등 주요 국가 행사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다.

퍼플하트는 향후 여건이 된다면 부상군인 오케스트라를 단순한 ‘음악 재활’ 차원을 넘어선 ‘전문 직업’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일반 취업이 어려운 부상군인들이 정식 연주자로 채용되어 임금을 받는 당당한 가장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서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주은 퍼플하트 사무국장은 “장기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모델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채용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10명으로 출발했지만 향후 30명, 50명 규모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확대해 국민에게는 감동을, 부상군인들에게는 희망과 일자리를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