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스프링 매트리스로 로켓포(RPG) 탄두를 막아내고, 중국 국기를 들어올리자 적들이 총격을 멈춘다. 중국 시장에서 1조원을 벌어들인 영화 ‘전랑2’의 장면이다. 중국 공산당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주선율 영화’가 단순한 선전물을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랑2’와 ‘장진호’부터 ‘지원군:욕혈화평’까지, 주선율 영화의 특징과 흥행 배경을 짚어봤다.
◆ 내수만으로 ‘1조원’ 수익…‘특수부대 전랑2’
‘전랑2’는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분쟁 지역에서 자국민을 구출하는 내용을 담은 군사 액션물이다. 배우 우징이 주인공 렁펑 역을 맡았으며, 할리우드 배우 셀리나 제이드, 프랭크 그릴로 등이 출연했다.
영화 속 렁펑은 전직 특수부대원이라는 설정으로, 그가 쏜 총알이 백발백중하거나 혼자서 다수의 무장 용병을 상대하는 등 사실상 초인에 가까운 영웅으로 묘사된다. 침대 스프링 매트리스로 로켓포 탄두를 막아내기도 한다.
이 같은 과장된 영웅주의는 영화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특히 렁펑의 활약을 부각하기 위해 주변 민간인의 희생을 지나치게 참혹하게 묘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인공의 영웅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민간인 희생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영화는 특정 국가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고 ‘아프리카’라는 공간 전체를 분쟁과 빈곤, 혼란이 가득한 곳처럼 묘사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수많은 국가가 존재함에도 이를 하나의 공간으로 뭉뚱그렸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중국인의 위상을 강조하는 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현지 반군이나 용병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물러서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영화 후반부다. 전장의 포위망을 통과하던 렁펑이 오성홍기를 들어 올리자, 서로 총격을 주고받던 양측이 사격을 멈추고 길을 터준다. 과장된 액션과 중국 국력에 대한 판타지를 결합해 관객의 애국심을 직관적으로 자극하는 장면이다.
‘전랑2’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약 1억6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약 56억 위안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당시 환율을 적용하면 1조원 안팎에 해당하는 규모다.
◆ 6·25전쟁 역사 왜곡과 편향된 영웅주의…‘장진호’
‘장진호’는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를 중국군의 시각에서 그린 대형 전쟁영화다. 첸카이거, 쉬커, 린차오셴 등 중국의 대표 감독들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1950년 겨울,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중공군 제9병단과 미군 해병 1사단이 맞붙었던 전투다.
영화는 미군의 우월한 화력과 상대적으로 나은 보급 상황을 보여주는 한편, 혹한 속에서 얼어붙은 감자 한 알로 버티며 전선을 지키다 동사한 중국군 병사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명령을 수행한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특히 추위 속에서 동사한 중국군 병사들을 향해 미군 장성이 경례하는 장면 등이 등장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연출을 둘러싼 논란도 일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의 관점만을 강조한 일방적인 전쟁 서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작품은 6·25전쟁의 남침이라는 역사적 본질과 원인을 뒤로한 채, 미군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는 ‘항미원조’(6·25전쟁을 부르는 중국식 용어)의 정당성만을 일방적으로 표현한다. 미군을 침략자로, 중공군을 동맹국을 구하기 위해 나선 선량한 수호자로 단선화해 역사적 맥락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외 시장에서는 흥행이 제한적이었지만 중국에서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중국 내수시장만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 확인되지 않은 ‘미군 세균전’ 담은 ‘지원군: 욕혈화평’
‘지원군: 욕혈화평’은 ‘지원군’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제목은 ‘피를 흘리며 얻어낸 평화’라는 뜻이다. 6·25전쟁의 제5차 전투 이후부터 정전협정 체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첸카이거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역시 중국군의 시각에서 6·25전쟁을 바라본다. 중국군의 희생과 평화 수호를 강조하는 한편 미국과 유엔군을 중국군과 대립하는 세력으로 묘사했다.
논란이 된 것은 이른바 ‘미군 세균전’을 다룬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세균무기를 사용했다는 중국 측 주장을 미군의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소재로 다룬다.
문제는 해당 주장이 현재까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과 북한은 전쟁 당시 미군이 세균전을 벌였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의 한국전쟁 연구자인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 역시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세균전이 있었다고 입증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전쟁의 한 장면으로 다루면서 미군에 대한 반감과 중국군의 피해자 이미지를 강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 주선율 영화가 선전을 이어가는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든 애국심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국의 주선율 영화가 단순한 인기 장르를 넘어 영화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관객의 선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책적·산업적 구조가 존재한다.
첫째는 성수기 외화 개봉을 제한하는 정책적 구조다. 중국에서는 춘절과 여름방학, 국경절 등 주요 성수기에 외국 영화의 개봉을 제한하는 이른바 ‘블랙아웃’이 운영돼 왔다. 경쟁 외화가 줄어든 시기에 자국 영화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영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유기업과 공공기관, 학교 등의 단체 관람이 더해지면서 주선율 영화의 흥행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둘째는 검열 시스템과 투자 구조다. 중국 영화시장은 소재와 표현에 대한 검열이 엄격한 편이다. 사회 비판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은 개봉 자체가 불확실해 제작사와 투자자에게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국가가 강조하는 가치와 애국주의를 담은 주선율 영화는 상대적으로 검열 위험이 낮아 안정적인 투자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미·중 갈등과 민족주의의 결합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당국은 할리우드 영화 수입을 줄이는 대신 자국 중심의 역사관과 애국주의를 담은 영화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주선율 영화를 통해 공산당 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국민적 결속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중국 대중문화 시장의 폐쇄성과 정부에 의한 통제를 꼽는다.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강한 만큼, 중국의 영화 역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중국은 자국 문화의 해외 진출이나 외국 문화의 자국 유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원활하지 않다”며 “글로벌 OTT 생태계에서도 소외된 채 스스로 고립된 형태”라고 분석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기보다 내수시장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콘텐츠에 중국 정부의 시각과 애국·민족주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주선율 영화들이 수치상의 압도적 흥행을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주선율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